'백인 특권' 꼬집자 美대학생들 분개…쿠바계 강연자 책 불태워

입력 2019-10-12 17:08
'백인 특권' 꼬집자 美대학생들 분개…쿠바계 강연자 책 불태워

대학 측, 처벌 않기로…"책을 태우는 것은 언론의 자유 안에 있어"



(서울=연합뉴스) 강영두 기자 = 미국의 한 대학 신입생들이 특강에서 쿠바계 미국 소설가가 '백인 특권'을 꼬집은 것에 불만을 품고 그의 소설을 불태우며 시시덕대는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논란이 되고 있다.

12일 미 CNN방송과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논란을 일으킨 학생들은 미 남부 조지아주(州)에 있는 조지아 서던 대학의 백인 남녀 신입생들이다.

이들은 지난 8일 쿠바계 이민자 출신 소설가 제닌 카포 크루셋(38)이 특강을 한 교양수업을 듣고 난 뒤에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

네브래스카 대학 영문학과 조교수인 크루셋은 자신의 가족 중 첫 대학생으로 명문 코넬대 출신이다. 백인 중심의 대학 문화에서 소외된 소수인종으로서 겪은 낯선 경험과 혼란을 담아낸 자전적 소설 '낳은 사람들 사이에서 집을 지으라'가 대표작이다.

크루셋은 이날 강연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미국 사회에 내재한 백인 특권을 지적하고 다민족 국가인 미국에 요구되는 다양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자 한 백인 학생이 강의 후 문답 시간에 "우리 학교에서는 우리가 배운 대로 다양성을 장려하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우리 캠퍼스에 오기로 한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그 목적을 이해할 수 없다"라고 질문했다.

이에 크루셋은 이 학생의 질문 자체가 백인의 특권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오늘 강의는 백인 특권에 대한 초청 강연이고, 학생이 지금 혜택을 보는 것처럼 백인 특권은 실재한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 학생은 이후 대학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크루셋이 "백인 대다수는 특권 의식을 갖고 있다"는 식으로 일반화를 했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조지아 서던 대학은 이번 분서 행위로 논란을 일으킨 신입생들을 처벌하지 않기로 했다.

이 대학 대변인 제니퍼 와이즈는 성명에서 "책을 태우는 것은 학생들의 수정헌법 1조 권리(언론의 자유) 안에 있다"며 이 사건에 연루된 학생들에게 어떠한 조치도 취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와이즈는 다만 "책을 태우는 것은 조지아 서던대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시민 담론과 사상 토론을 장려하는 행위도 아니다"라고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였음을 지적했다.

미국 펜클럽의 조너선 프리드먼 대학언론자유 국장은 성명을 내고 "학생들이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을 보니 매우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프리드먼 국장은 "이 상징적인 행위는 단순히 사상을 거부하거나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이 적힌 책의 흔적을 없애려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면서 "책을 불태우는 것이 공개 담론과 표현의 자유에 왜 해로운 것인지 학생들에게 교육하는 것이 대학의 본분"이라고 말했다.



k027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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