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수출규제 100일…한일관계 평행선 속 내실 강화 '박차'

입력 2019-10-10 10:30
日수출규제 100일…한일관계 평행선 속 내실 강화 '박차'

WTO 제소·백색국가 제외 '맞대응'…'소부장' 대책 속도

'띄엄띄엄' 허가에 속 타는 기업들…제네바서 실마리 풀까

(서울=연합뉴스) 고은지 기자 = 일본이 한국을 겨냥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3개 품목의 수출규제를 단행한 지 11일이면 100일이 된다.

일본은 지난 7월 4일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등 3개 품목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조치를 취한 데 이어 8월 28일에는 한국을 일본의 백색국가(수출절차 우대국)에서 제외했다.

이에 대응해 한국은 지난달 11일 일본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고 일주일 뒤 한국의 백색국가에서 일본을 사실상 제외하도록 전략물자 수출입고시를 개정했다.



이처럼 일본의 수출규제 단행 이후 100일간 한일 양국 관계는 평행선을 그리며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도 됐다.

대일의존도가 높았던 소재·부품 분야 국내 기업들은 일본산을 대체할 수입처를 마련하거나 국산화 비율을 높이는 등 차츰 안정을 찾아가는 분위기다.

정부는 양적 성장에 치중해온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질적으로도 성장하는 기회로 삼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해당 분야 연구개발(R&D) 등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대책을 마련했다.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처음으로 오는 11일 한일 통상당국 고위급 만남이 이뤄지는 가운데 양국 관계가 전환점을 맞을지도 주목된다.

◇ 日수출규제로 촉발된 갈등…양국 교역 모두 악화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성 조치로 7월 1일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단행한다고 밝혔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을 한국으로 수출할 때는 기존처럼 포괄허가가 아닌 개별허가를 받도록 규제를 강화한 것이다.

아울러 한국을 일본의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담은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고시했다.

반도체 소재 3개 품목 수출규제는 7월 4일부터 바로 진행했고,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은 의견수렴과 각의(국무회의)를 거쳐 8월 28일부터 시행 중이다.

그사이 한국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철회를 위해 수차례 만남을 제안했지만, 일본은 번번이 명확한 설명 없이 이를 거부했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8일만인 7월 12일 실무자(과장)급 양자협의(일본은 '설명회'라고 주장) 이뤄지긴 했으나 이 역시 만남의 목적과 형식, 내용을 두고 입장 차이만 확인하고 헤어졌다.



일본이 일방적인 조치로 일관하고 대화를 거부하자 한국의 반격이 이뤄졌다.

한국은 일본의 3개 품목 수출제한 조치가 자유무역 원칙에 어긋난다며 9월 11일 일본을 WTO에 제소했다.

또 일본을 백색국가인 '가' 지역에서 사실상 비(非)백색국가인 '나' 지역의 대우를 받는 '가의2' 지역으로 변경하는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을 지난달 18일 시행했다.

일본의 공격에 한국이 맞서며 차례로 칼을 휘두른 사이 양국 교역은 모두 내리막을 걸었다.

7∼8월 한국의 대일본 수출 감소율은 -3.5%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일본의 대한국 수출 감소율은 한국의 두배가 넘는 -8.1%에 달했다.

지난달 한국의 대일 수출액은 23억2천3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 대비 5.9% 감소했다.

대일 수입 감소율은 7월 -8.4%, 8월 -8.2%, 9월 -8.6%로 집계됐다.

일본 수출규제 대상 품목의 대일 수입액은 1억8천만달러로 전체 대일 수입액 117억1천만달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6%에 불과하다.

하지만 해당 품목의 일본산 비중이 높아서 기업이 느끼는 어려움은 훨씬 컸다.

불화수소의 일본 시장 의존도는 44.6%이고 나머지 2개 품목은 90%가 넘는다.

일본이 수출규제를 단행한 직후 3개 품목의 수입이 당장 막히면서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들은 상당한 혼란을 겪었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규제 사흘만인 7월 7일 긴급물량 확보를 위해 일본 출장길에 오르기도 했다.

일본은 정상적인 민간 용도의 수출은 허가해준다는 입장을 내놓았지만, 실제로 90일이 지나도록 대한국 수출허가가 승인된 것은 7건에 그쳤다. 액체 불화수소(불산액)는 한건도 들어오지 못했다.

일본의 개별허가 승인 기간은 일반적으로 약 90일이다.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2일 국정감사에서 일본의 수출허가 승인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자료 보완 요구가 많다"고 말했다.

◇ '위기를 기회로' 민관 합심해 국산화 전력…성과 가시화

일본의 수출규제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산업에 단기적으로 적잖은 타격을 줬다.

하지만 국내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한계를 깨닫고 한단계 발전할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정부는 지난 8월 5일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예산, 세제, 금융 등 전방위적으로 지원해 단기적 어려움을 풀고 중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을 강화하는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확대로 수급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는 100대 품목을 1∼5년 내 국내에서 공급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혁신형 연구개발(R&D) 지원,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인수·합병(M&A) 자금 지원, 수입 다변화 등 가용 가능한 정책 카드를 모두 동원하고 총 45조원에 이르는 예산·금융을 투입하기로 했다.

한 달여가 지난 지금 정부는 후속 조치를 차근차근 시행하고 있다.

우선 올해 추가경정예산안에 2천732억원을 반영하고, 내년 예산에 2조1천억원 규모로 소재·부품·장비 지원 예산을 편성했다.

11일에는 한국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주춧돌이 될 대통령 직속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위원회를 가동한다.

당장 국산화가 어려운 품목은 해외 소재강국과의 협력을 강화했다.

산업부는 지난달 19일 글로벌 소재·부품·장비 강국인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코트라(KOTRA), 한국소재부품투자기관협의회와 함께 투자유치에 나섰고, 오는 28∼31일 열리는 '소재·부품 국제협력 위크(WEEK)'에서는 미국, 프랑스, 이스라엘과도 기술교류 세미나, 일대일 상담회, MOU 체결 등 다양한 협력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기업도 안정적인 수급과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아직 한건도 수출허가가 안 난 불산액의 경우 "1일부터 일부 생산라인에 국산 액체 불화수소를 투입해 사용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초 LG디스플레이[034220], 삼성전자 등이 일본 고순도 불화수소 일부를 국산품으로 대체한 데 이어 또 다른 국산화 행보다.

삼성디스플레이도 최근 국산 액체 불화수소 테스트를 완료했으며, 조만간 생산라인에 투입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LG디스플레이는 이달 내 불산액 100% 국산화를 앞두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8일 국무회의에서 "며칠 후면 일본의 수출 규제가 시작된 지 100일이 넘어간다"며 "정부·기업의 신속하고 전방위적인 대응, 국민 호응까지 한데 모여서 지금까지는 대체로 잘 대처해 왔고 수입선 다변화와 기술 자립,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 등 여러 면에서 의미 있는 성과도 만들어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도전 기회로 만들어 우리 산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환점이 된다면 우리 경제의 체질과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더욱 속도를 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석 달 넘게 이어온 한일 갈등을 풀 자리도 마련된다.

산업부는 11일 제네바에서 일본과 WTO 양자협의를 한다고 밝혔다.

양자협의는 WTO 분쟁의 첫 번째 단계로, 통상적인 절차라서 그 자체에 큰 의미를 두긴 어렵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과장급에서 양자협의를 하는 것과 달리 이번 만남은 국장급에서 성사된 점에서 전향적인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번 만남에서 일본의 수출 제한조치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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