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군사작전 임박…전운 짙어지는 시리아 북부
안보 불안요소 제거하고 난민 문제해결까지 노리는 터키
터키군 막아온 미국, 고립주의·내년 대선 변수에 눈 감아
풍전등화 쿠르드족 운명…국제사회 우려 커져
(이스탄불=연합뉴스) 김승욱 특파원 = 쿠르드족이 장악한 시리아 북동부에 전운이 짙어지고 있다. 터키의 군사작전이 초읽기에 돌입한 때문이다.
미국 백악관은 6일(미국동부 현지시간) "터키가 오래 준비한 시리아 북부 군사작전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테퍼니 그리셤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에서 "미군은 그 작전에 지원도 개입도 안 할 것이며, 인접 지역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상 터키군의 시리아 북동부 진격에 눈을 감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미국의 불개입 선언으로 '이슬람국가'(IS) 격퇴전의 선봉에 섰던 쿠르드족의 운명은 그야말로 풍전등화다.
2014년 이후 IS 격퇴전에서 희생된 쿠르드 청년의 수는 약 1만1천명에 달한다. 쿠르드족은 이들의 목숨을 담보로 '미국의 동맹'이라는 위치를 얻어냈지만, 결국 미국의 외면 속에 터키군의 포화와 맞서야 하는 처지가 됐다.
미군은 이날 즉시 시리아 북동부에서 철수를 시작했으며, 터키군은 미군의 철수가 마무리되면 곧바로 유프라테스강을 넘어 시리아 북동부로 진격할 기세다.
국제사회는 터키군의 창끝에 놓인 쿠르드족의 운명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 '눈엣가시' 뽑고 난민 문제 해결까지…일석이조 노리는 터키
터키에 시리아 쿠르드족은 그야말로 '눈엣가시'다. 쿠르드족은 독립 국가를 가지지 못했지만 그 수가 3천만∼4천만명에 이른다. 독립 국가를 세우지 못한 민족 중 최대 규모다.
이들 가운데 약 1천500만명이 터키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CIA 월드 팩트북에 따르면 터키 인구 8천100만명 가운데 쿠르드계 인구는 약 19%에 달한다.
터키 인구의 70∼75%를 차지하는 투르크계의 입장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수다.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북동부를 장악한 쿠르드족이 이 지역을 발판으로 쿠르드 독립 국가의 기치를 올릴 경우 가장 큰 불안에 노출될 국가가 바로 터키인 셈이다.
실제로 터키 내 쿠르드족 일부는 적극적으로 분리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쿠르드노동자당'(PKK)이 대표적이다.
1978년 설립된 PKK는 쿠르드족의 분리독립을 목표로 폭력주의 노선을 채택하고 40년 넘게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터키 정부는 지난 40여년간 4만 명 이상이 PKK의 테러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터키에 PKK는 악독한 테러조직이자 철천지원수다.
터키는 시리아 쿠르드족의 민병대인 인민수비대(YPG)도 PKK의 시리아 분파로 여긴다.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며 터키 군경의 추격을 피하고 PKK와 연계해 테러를 이어간다고 보는 것이다.
터키가 YPG를 최대 안보 위협 세력으로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터키는 시리아 북동부의 YPG를 격멸해 안보 불안 요소를 제거하는 한편, 골칫거리인 난민 문제도 해결하려는 심산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달 5일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 지역위원장 간담회에서 "터키 내 시리아 난민 365만명 가운데 100만명 이상을 시리아 안전지대 내부에 정착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시리아 안전지대'는 터키와 미국이 시리아 북동부와 터키 국경 사이에 설치하기로 한 일종의 완충지대를 뜻한다.
터키는 약 480㎞에 달하는 시리아 국경을 따라 폭 30∼40㎞의 안전지대를 설치하고, YPG를 몰아낸 뒤 자국 내 시리아 난민을 이주시킬 계획이다.
터키는 지난 1일 안전지대 안에 140개 마을과 10개 지역 중심지를 조성하고 주택 20만 채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5인 가족 기준 100만명을 이주시킬 수 있는 규모다.
터키에 시리아 군사작전은 테러 위협을 제거하는 동시에 난민 문제까지 해결하는 일석이조의 카드인 셈이다.
◇ 터키 군사작전 막던 미국은 왜 눈을 감았나
미국에 시리아 쿠르드족은 IS 격퇴전에서 함께 싸운 전우이자 동맹이었다.
IS 격퇴전은 공식적으로 종료됐지만 미국은 지금까지 '전우를 외면할 수 없다'며 시리아 북부에 약 1천명을 배치해왔다.
이들은 호시탐탐 시리아 북부로 진격할 기회를 노리는 터키군에게서 쿠르드족을 보호하는 방패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7일 트위터에 "쿠르드족은 우리와 함께 싸웠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돈과 장비를 지급받았다"며 "거의 3년 동안 이 싸움을 막았지만, 이제 끝없는 전쟁에서 벗어나 우리 군인들을 집으로 데려올 때"라고 글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 주둔 미군을 철수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그는 지난 연말에도 트위터에 글을 올리고 "우리의 위대한 젊은이들을 고향으로 데려올 시간이 됐다"며 시리아 철수를 선언했다.
그러나 이 트윗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역풍을 맞았다. 제임스 매티스 당시 국방장관은 시리아 철군에 항의해 사표를 냈으며, 국내외에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국제 사회는 미군이 철수할 경우 터키군이 시리아 북동부로 진격해 대규모 민간인 피해가 발생할 것을 우려했다.
국내에서도 시리아 철군으로 쿠르드족이 위험에 빠질 경우 다른 동맹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으며, 이는 미국의 리더십에 금이 가게 할 것이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외의 반발에 시리아 철군을 미뤘지만, 다시 한번 시리아에서 발을 빼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야당은 물론 여당인 공화당 내부에서도 당혹스럽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이날 미국 방송 '폭스 앤드 프렌즈'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과 이번 결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며 "누군가와 약속을 하고 그가 당신을 위해 싸우고 있다면 미국은 반드시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손꼽히는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도 트위터를 통해 "언론 보도가 정확하다면 이는 엄청난 재앙"이라고 비판했다.
이미 한번 국내외의 반발을 경험한 트럼프 대통령이 재차 시리아 철군 의사를 밝힌 배경을 두고 그의 고립주의와 내년 미국 대선을 지목하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에 대해 '그동안 미군을 도와 IS 격퇴전에서 함께 싸운 시리아 쿠르드 지원에 너무 큰 비용이 든다며 더는 지원하지 않겠다는 주장'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우선주의와 고립주의가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해석했다.
AP통신은 "탄핵에 직면한 트럼프가 해외 동맹국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위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치 공약을 이행하는 데 더 치중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커지는 국제사회의 우려
설마 했던 터키군의 진격이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쿠르드족의 운명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파노스 뭄치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시리아 조정관은 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최선을 바라지만, 최악의 경우도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뭄치스 조정관은 "앞으로 벌어질 군사작전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정말 알 수 없다"면서도 "유엔은 '안전지대'와 관련해 쓰디쓴 기억이 있고, 그것은 절대 장려하지 않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 사례나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돌이켜볼 때 유엔은 안전지대가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가 언급한 스레브레니차 사례는 1995년 보스니아 내전 중 일어난 스레브레니차 학살을 일컫는다. 당시 보스니아에 주둔하던 세르비아군은 스레브레니차 지역의 이슬람교도 8천500여명을 사살했다.
유럽연합(EU)도 이날 터키군이 시리아 북동부로 진격할 경우 민간인 피해와 대규모 난민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U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대외관계청(EEAS)의 마야 코치얀치치 대변인은 이날 "시리아 북동부의 무장 적대행위는 민간인 피해를 늘리고 대규모 피란민을 낳을 뿐 아니라 현재의 정치적 노력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kind3@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