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재단 '노벨상 근접 한국 학자' 놓고 '타당성·적절성' 논란

입력 2019-10-10 14:40
연구재단 '노벨상 근접 한국 학자' 놓고 '타당성·적절성' 논란

"국내 수준 탐색 위한 분석" vs "수상 기준과 무관한데 왜 노벨상 언급?"

(서울=연합뉴스) 신선미 기자 = 한국연구재단이 올해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노벨과학상 수상자의 연구업적에 근접한 한국 연구자'를 발표한 것에 대해 과학계에서 분석방법도 타당하지 못할 뿐 아니라 공공기관으로서 적절치 못한 행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연구재단은 지난 4일 국내외 기관 소속 한국인 연구자 17명의 이름이 실린 '노벨과학상 수상자의 연구업적에 근접한 한국 연구자' 목록을 공개하고, 연구자 중 일부를 분석 대상으로 삼아 노벨상 수상자 연구 업적과 비교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연구 현장에서는 기초과학 연구자가 아닌 공학자까지 포함시켜 자의적 기준으로 분석 대상을 정했으면서 굳이 '노벨상'과 연관시켜 자료를 공개한 것은 정부 R&D 관리 기관으로서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생리의학상과 물리학상, 화학상 등 과학 분야 노벨상의 주요 선정 기준은 '연구의 독창성', '인류에 기여한 공헌도' 등이다. 최초의 발견·기술개발을 통해 지식을 확장하거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등 인류에 공헌한 연구자가 상을 받는다.

'중력파'를 사상 최초로 탐지하는 프로젝트에 기여해 2017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라이너 바이스 매사추세츠공대 명예교수, 배리 배리시·킵 손 캘리포니아공대 명예교수 등의 연구도 '최초' 업적에 해당한다. 올해도 태양형 별 주위를 도는 외계행성을 '최초'로 발견한 스위스 제네바대의 미셸 마요르 명예교수와 디디에 쿠엘로 교수가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이는 노벨 과학상 수상자 선정에서 '연구의 독창성'과 '최초'가 핵심적 기준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구재단은 이번 분석에서 이런 독창성은 고려하지 않고 '네이처'와 '사이언스', '셀' 등에 논문을 2편 이상 발표한 연구자 등 주로 학술지 피인용 수를 기준으로 목록을 만들었다.

하지만 노벨상 수상자 중에는 네이처와 사이언스, 셀 등에 논문을 싣지 않거나 학술지 피인용 수가 높지 않은 연구자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개똥쑥 속 성분이 말라리아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입증해 2015년 노벨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한 투유유 중국 전통의학연구원 교수가 대표적이다. 연구재단에 따르면 투유유 교수는 총 24편의 논문을 썼고 이중 네이처, 사이언스, 셀에 실린 것은 없다. 또 피인용 수가 상위 10%인 저널에 발표한 논문은 4편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연구재단은 "연구의 독창성, 인류에 기여한 공헌도, 학계 내 영향력, 연구 업적 등의 다양한 요인은 주관적 해석이 들어갈 수 있어 정량적이고 객관적 분석이 가능한 서지분석만 이용해 검토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노벨 과학상 수상자 선정에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되는 요인들을 제외하고 분석한 결과를 '노벨상' 관련 제목으로 공개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설명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이에 대해 "노벨상은 피인용지수로 상을 주는 기록경기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특히 국내에서 기초연구를 위한 정책과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음에도 노벨상 시즌마다 수상자를 내지 못하는 과학계를 향해 '우물에서 숭늉 찾기식'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정부 R&D를 관리하는 연구재단이 연구 활동을 노벨상과 연관시켜 분석한 자료를 공개한 것 자체가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인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옛 톰슨로이터)의 경우 해마다 논문의 피인용 수를 기반으로 '노벨 클래스'라며 우수 연구자를 선정하지만, 과학계에서는 이를 기업을 알리려는 홍보 행위로 간주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과학기술특성화대 교수는 "노벨상 시즌에 연구재단을 대중에 어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기초과학이 발전하고 있다는 건지, 아직 부족하다는 건지 전달하려는 메시지도 없다"고 꼬집었다.

다른 연구자 역시 "노벨상은 기초연구에 돌아가는 데 공학자의 이름도 넣었다"면서 "'노벨상' 없이 우수 연구자, 이런 식이었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연구재단은 "우리나라의 현재 수준을 해외 사례와 비교·탐색하기 위한 것으로, 일부 특정 연구자를 '선정'한 것이 아닌 분석 결과"라면서 "연구재단의 지원 성과를 별도로 반영하거나 고려하지 않았다"며 기관 홍보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s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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