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극우 르펜 "시라크 죽음에 웬 야단법석"

입력 2019-10-03 05:00
佛 극우 르펜 "시라크 죽음에 웬 야단법석"

"국가적 애도 분위기에 충격…시라크, 좋은 대통령과 거리 멀어"

2002년 대선 완패…시라크, 르펜과 TV토론 거부 등 상종도 안 해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프랑스 극우세력의 대표 정치인이었던 장마리 르펜(91)이 자신과 2002년 대선에서 맞붙었던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에 대한 국가적인 애도 분위기에 놀랐다면서 "그는 최고의 대통령이 아니었다"고 혹평했다.

르펜은 2002년 대선에서 극우 후보로는 최초로 결선투표에 진출했지만, 극우의 집권을 막으려는 유권자들이 시라크에게 몰표를 줘 완패했다.

르펜은 2일(현지시간) 프랑스 앵테르 라디오에 출연해 시라크가 지난달 26일 타계한 뒤 프랑스에서 전국적인 추모행렬이 이어진 것에 "조금 충격을 받았다"면서 "시라크의 죽음과 장례를 둘러싸고 미디어들이 야단법석을 떨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고의 대통령과는 거리가 멀었다"면서 "세상의 영화(榮華)는 덧없이 사라지는 것이고, 죽은 뒤 큰 업적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극우정당 국민연합(RN)의 대표인 큰딸 마린 르펜이 시라크의 장례식에 참석하려 했던 것을 두고도 "옳지 않았다"면서 "나는 가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일관된 사람"이라고 말했다.

마린 르펜은 시라크 전 대통령의 유족이 극우 인사가 장례식에 오는 것을 원하지 않아 참석하지 못했다.

장마리 르펜은 시라크와 결선에서 맞붙었던 대선 당시에 대해서도 "시라크는 민주주의의 전통 규범을 지키지 않은 적수였다. 특히 대선 결선투표에서 그랬다. (그의 죽음에) 아무 느낌 없다"고 말했다.

르펜은 2002년 극우정당 국민전선(국민연합의 전신) 후보로 대권에 도전해 2차 투표에 진출하는 이변을 연출한 뒤, 결선에서 중도우파진영의 시라크에게 완패했다.

결선투표에서는 극우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중도, 좌파, 극좌파 진영까지 모두 똘똘 뭉쳐 시라크에게 표를 몰아줬고, 이 덕분에 시라크는 82.21%라는 높은 득표로 르펜을 압도하고 재선에 성공했다.

시라크는 당시 결선에서 백인 우월주의, 동성애 혐오, 반(反)유대주의 등의 노골적인 극우 성향을 가진 르펜과 맞붙자 TV 토론을 거부하는 등 철저하게 르펜 측을 무시하는 전략을 취했다. 무관용과 증오의 세력과는 합리적 토론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르펜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부정하거나, 테러로 숨진 경찰관에게 동성애 혐오 발언을 해 기소되는 등 끊임없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에는 회고록을 출간해 홍보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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