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역대 톈안먼 열병식 어땠나…이번이 16번째

입력 2019-10-01 12:09
수정 2019-10-01 13:04
中, 역대 톈안먼 열병식 어땠나…이번이 16번째

건국 초기 매년 거행…1984년 부활해 국력 과시

마오쩌둥 등 역대 군사위 주석 모두 사열대 올라



(베이징·선양=연합뉴스) 심재훈 차병섭 특파원 = 중국이 신중국 건국 70주년 국경절인 1일 베이징(北京)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열병식을 거행했다.

중국의 톈안먼 열병식 역사는 깊다.

공산주의 국가 특성상 중국의 열병식은 중국의 국력을 대내외에 보여주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의 역대 열병식은 시기별로 중국군의 신형 장비를 보여주는 만큼 중국의 종합 군사력의 발전사라고 할 수 있다.

신중국이 건립된 1949년부터 10년간 매년 건국절에 정례적으로 열렸다. 하지만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 일어나면서 1960년부터 24년간 중단됐다.

신중국 건국이 선포된 1949년 10월 1일 톈안먼광장에서 열린 개국 열병식은 국민당을 대만으로 몰아낸 중국 공산당 부대인 홍군이 인민해방군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첫선을 보였다.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이 톈안먼 성루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을 선언한 뒤 보병, 포병, 기갑부대, 기병 등 1만여명이 참가한 열병식이 거행됐다.

당시 전투기 17대가 광장 상공을 비행했는데 당시 내전의 위급한 상황을 반영해 4대에는 실탄이 실려있었다. 당시 등장한 군 장비들은 전쟁터에서 획득한 것들이었다.

이후 1959년까지 매년 10월 1일에 한 차례씩 열병식을 치르는 것이 관례화됐고, 마오쩌둥 등 중국 수뇌부들이 성루에서 서서 사열했다.

1950년 열병식은 2만5천명의 육해공군과 민병대대가 참여해 최대 규모로 치러졌다. 1천900필의 백마를 탄 기병부대가 광장을 통과하는 모습도 장관이었다.

열병식 후 20여일 만에 중국은 한국전쟁 참전을 결정한다.

1953년 열병식에서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인민지원군'이 사열에 참여했고 중국군 총사령관인 주더(朱德)가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한국전쟁을 일컫는 중국 호칭)의 승리를 선언하기도 했다.

1955년 열병식에는 중국이 초청한 50여개국의 외교사절 2천여명이 참관했다. 중국군이 편제를 정비하고 신식 군복을 들여와 치른 열병식이었다.

1959년 열병식 이후로는 24년간 열리지 않았다.

이후 개혁·개방을 기치로 내걸고 집권한 덩샤오핑(鄧小平) 전 주석이 군민 단합에 필요하다며 열병식을 부활시켰다.



1984년 열린 열병식에서 덩샤오핑 전 주석이 의전차량을 타고 군부대를 사열했다. 전략 미사일부대도 첫선을 보였다.

건국 50주년을 기념해 열린 1999년 열병식은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 사열을 맡았다. 중거리 핵미사일이 등장했고 해병대, 특경부대, 예비군부대 등이 처음으로 참가했다.

건국 60주년이었던 2009년 열병식에서는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이 사열을 맡았는데 참가 인원이 8천명 정도로 규모가 축소됐다.

이처럼 마오쩌둥 전 주석을 포함해 군 통수권자로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지낸 중국 최고지도자들은 모두 한차례 이상 톈안먼 사열대에 오른 셈이다.

국경절 외에 지난 2015년 톈안먼에서 열린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열병식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과 참관하며 밀접한 한중 관계를 과시하기도 했다.

다음은 1949년부터 건국 70주년인 올해까지 톈안먼광장에서 진행된 열병식.

▲1949년= 신중국 건국이 선포된 해 열린 개국 열병식은 국민당을 대만으로 몰아낸 중국 공산당 부대 홍군이 인민해방군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첫선을 보였다.

열병식에 등장한 무기는 모두 국민당군으로부터 노획한 것이었다.

열병식장 상공에는 17대의 공군 항공기가 비행했으며, 내전 상황임을 고려해 이 중 4대에는 실탄이 실려있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해에 거행된 이 열병식에는 육·해·공 3군에서 약 2만5천 명의 병력이 참가했다. 중국은 열병식 후 20여 일 만에 한국전쟁 참전을 결정한다.

▲1951년= 처음으로 민병대가 참가했다.

▲1952년= 공안 병력과 소수민족 민병이 처음 참가했다.

▲1953년=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인민지원군'이 사열에 참여했고 중국군 총사령관인 주더(朱德)가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한국전쟁) 승리를 선언했다. 로켓 포병이 옛 소련제 로켓포를 휴대하고 첫선을 보였다.

▲1954년= 북한 김일성 주석이 참관했다. 육군· 포병· 장갑병 등이 톈안먼에 설치된 사열대를 지나갔다.

▲1955년= 중국이 초청한 50여 개국의 외교사절 2천여 명이 참관했다. 중국군이 편제를 정비하고 신식 군복을 들여와 치른 열병식이었다.

▲1956년= 많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진행됐으며, 열병식 차량으로 국산 차인 '제팡(解放)'이 처음 등장했다.

▲1957년= 국산 폭격기와 전투기가 첫선을 보였다.

▲1958년= 사관학교에 해당하는 군사학원 생도들이 참가했다. 보병·포병·탱크병·공군·해군 생도 등이 참가했다.

▲1959년= 건국 10주년 열병식으로, 각계군중 75만 명이 참관했다. 열병식 참가 병력은 최신 자동소총·대포·탱크·전투기 등 국산 무기를 선보였다. 건국 5주년 열병식에 이어 김일성 주석이 참관했다.

▲1984년= 문화대혁명 등 여러 복잡한 사정 때문에 열병식이 중단됐다가 25년 만에 재개됐다. 국민대행진이 거행됐고, 전략 미사일부대가 처음 등장했다.

▲1999년= 건국 50주년을 맞아 15년 만에 재개된 열병식에는 중거리 핵미사일이 등장했고 해병대·특경부대·예비군부대 등이 처음으로 참가했다.

▲2009년= 건국 60주년을 맞아 10년 만에 열린 열병식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둥펑(東風)-31'과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쥐랑(巨浪) 2호'가 등장했다.

▲2015년=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을 맞아 열린 열병식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참관했다. 군사 굴기를 내세운 열병식에서 '항공모함 킬러'로 알려진 둥펑-21D 등 핵전략무기가 공개됐다.

▲2019년= 건국 70주년을 맞아 역대 최대 규모의 열병식이 진행됐고 둥펑-41 미사일 등 첨단 무기가 대거 선보였다.

president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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