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총무성 전직 차관, 계열사 부정폭로 막으려 NHK 압박 논란

입력 2019-09-29 17:14
日총무성 전직 차관, 계열사 부정폭로 막으려 NHK 압박 논란

간포세이메이보험 부적절 판매 보도에 지속 항의…NHK 회장 사실상 사과

총무상 "별문제 없다" 반응…아베 정권서 언론·표현의 자유 논란 반복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일본 우편·금융 그룹인 닛폰유세이(日本郵政)가 계열사 비리 보도를 막으려고 관료 출신 임원을 동원해 NHK를 압박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닛폰유세이 측이 NHK에 끈질기게 항의하면서 후속 보도가 1년이나 지나서 이뤄지는 등 NHK가 압력에 굴복한 것으로 의심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사건은 닛폰유세이 자회사인 간포세이메이(かんぽ生命)보험이 부적절한 방식으로 보험상품을 판매한 것을 NHK가 폭로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시작됐다.

NHK 시사고발 프로그램인 '클로즈업 겐다이(現代) 플러스(+)'는 간포세이메이의 보험 판매를 담당한 직원이나 계약자 등의 제보를 토대로 '고령자를 상대로 한 무리한 계약이 횡행하고 있다'고 작년 4월 24일 보도했다.

제작진은 속편 제작을 위해 제보를 요청하는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는 등 적극성을 보였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속편은 올해 7월에서야 방영됐다.



닛폰유세이 측이 NHK에 이례적으로 강하게 대응한 정황이 최근에 드러나고 있다.

NHK가 닛폰유세이의 거듭된 항의를 받고 속편 방영을 연기했으며, NHK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경영위원회가 닛폰유세이 측의 의견을 받아 우에다 료이치(上田良一) NHK 회장을 엄중 주의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마이니치신문은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닛폰유세이 측은 작년 7월 11일 우에다 회장에게 '범죄적인 경영을 조직적으로 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며 항의하고 제보 요청 동영상 삭제를 요구했다.

이에 제작팀 간부가 닛폰유세이 측에 '프로그램 제작과 경영은 분리돼 있고 회장은 제작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뜻을 표명하자 닛폰유세이 측은 이를 문제 삼았다.

닛폰유세이 측은 '방송법에는 프로그램 제작과 편성의 최종책임자가 회장이라고 명확히 돼 있다. NHK는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며 설명을 요구하는 문서를 보내 우에다 회장을 압박했다.

아울러 클로즈업 겐다이 플러스의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고 거부의 뜻을 밝혔고, 이런 가운데 NHK는 작년 8월 초 속편 방영을 연기를 결정하고 제보 요청 동영상도 삭제했다.

애초에는 8월 중순에 속편을 방영할 계획이었으나 대폭 늦춰진 것이다.



우에다 회장이 설명 요구에 응답하지 않자 닛폰유세이 측은 작년 10월 NHK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경영위원회에 '거버넌스(통치) 검증' 등을 요구하는 문서를 보내는 등 압박 수위를 높였고 경영위원회는 우에다 회장에게 엄중 주의 처분을 내렸다.

버티던 우에다 회장은 결국 작년 11월 닛폰유세이 측에 '잘못된 설명이었다'는 뜻을 문서로 표명했으며 이는 사실상의 사죄였다고 교도통신은 보도했다.

부정 의혹이 제기된 것은 닛폰유세이 측인데 오히려 NHK가 쩔쩔맨 셈이다.

이런 과정에서 전직 고위 관료가 사건에 개입한 정황이 나오고 있다.

마이니치는 NHK 경영위원회가 우에다 회장을 질책한 후 총무성 사무차관 출신인 스즈키 야스오(鈴木康雄) 닛폰유세이 상급부사장이 경영위원회 측에 감사의 뜻을 담아 작년 11월 7일 경영위원회에 보낸 문서가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스즈키는 총무성 재직 시절 방송행정을 담당하는 부서 책임자를 지낸 인물이다.

그는 "그룹의 부탁에 응해 (우에다 회장 등) 집행부에 대해 조속하게 과단한 조치를 취해주셔서 깊이 감사드린다"며 "(NHK 집행부에 대해) 계속 강력한 지도·감독을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스즈키는 또 "과거에 방송 행정에 관여하고 (NHK의) 거버넌스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방송법 개정안 작성 책임자였던 입장에서 간부·경영진에 의한 프로그램의 최종 확인 등 폭넓은 거버넌스 체제의 확립과 강화가 필요"하다는 뜻을 NHK에 표명했으며 이런 사실이 그가 NHK 경영위원회에 보낸 문서에 나타나 있다고 마이니치는 전했다.

이와 관련, 닛폰유세이 측은 NHK나 NHK경영위원회에 항의하고 문서를 보낸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지만 취재나 제작에 대한 압력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방송 정책을 담당한 전직 관료가 나서 사실상 NHK를 압박한 것이고 NHK는 이에 굴복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수의 NHK 관계자들은 '경영위원회가 회장을 엄중 주의한 것이 개별 프로그램에 대한 개입을 금지한 방송법에 저촉될 수 있는 대응'이라며 '닛폰유세이 측의 항의가 취재·제작 현장을 향한 압력이라고 느꼈다'는 뜻을 밝혔다고 마이니치는 전했다.

NHK경영위원회는 NHK의 최고의사결정기구로 회장 등 집행부의 직무를 감독하지만 개별 프로그램의 편집에 개입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스나카와 히로요시(砂川浩慶) 릿쿄(立敎)대 교수(미디어론)는 "방송행정에 장기간 관여한 전직 사무차관인 스즈키 씨가 관여한 것은 NHK 측에 압박이 됐다는 것은 틀림없을 것"이라며 "닛폰유세이 측의 눈치를 한층 더 보게 된 것이 아니겠냐"고 의견을 밝혔다.

한 민영방송의 제작 실무자는 "내용이 어떻든 문제를 추궁하려고 하는 상대방에게 수장이 사죄하고 만다면 현장의 (제작) 책임자는 '조금 상황을 지켜보자'는 태도를 보이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과감한 취재가 불가능해진다"고 교도통신에 의견을 밝혔다.

NHK 아나운서 출신의 언론인 호리 준(堀潤) 씨는 "NHK는 시청자를 위한 방송국"이라며 "그런 모습을 잃어버리고 대기업이나 권력기구를 배려한다면 NHK의 자살"이라고 NHK의 각성을 촉구했다.



일본 정부는 별문제가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무상은 NHK 경영위원회가 우에다 회장을 엄중 주의한 것에 대해 "경영위원회의 권한 범위에서 이뤄졌다"고 27일 기자들에게 말했다.

그는 프로그램 제작에 대한 개입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경영위원회에 감독 권한이 있다면서 "방송법에 반하는 행동을 한 것은 아니다"고 언급했다.

한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에서는 언론 통제·개입이나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개각에서 총무상에 다시 임명된 다카이치는 2016년 총무상에 처음 재직하던 시절에는 "행정지도를 해도 전혀 개선되지 않고, 공공의 전파를 사용해 (불공정한 방송을) 반복하면 그에 대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는 없다"고 말해 언론 통제 의도를 드러냈다는 지적을 샀다.

집권 자민당은 2014년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도쿄의 주요 방송사에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보도하라', '아베노믹스(아베 내각의 경제정책)에 관해 균형 있게 보도하라'는 등의 문서를 보내 언론을 위축시킨다는 비판을 자초하기도 했다.

최근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을 일본에 선보인 '표현의 부자유전(不自有展)·그 후'가 중단된 것을 이유로 관련 행사에 대한 보조금을 전면 취소해 사실상의 검열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간포세이메이의 보험 부적절 판매는 고객에게 보험계약을 해지하고 같은 종류의 보험으로 다시 계약하도록 권유해 이를 따른 고객의 보험료 부담이 늘어나는 등 불이익 사례가 다수 발생한 사건이다.

과거 5년간 약 18만3천건의 계약에서 고객에게 불이익을 줬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잠정 파악됐다.

간포세이메이 보험 판매의 90%를 차지하는 전국 약 2만개의 우체국에서 부정판매가 횡행했으며 고령층에서 피해자가 많이 발생했다.

고객이 이른바 '갈아타기' 계약을 하면 영업실적에 가산되기 때문에 실적을 위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무리하게 보험을 판매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은 2005년 10월 공포된 우정민영화법에 따라 정부에 집중돼 있던 우편행정 등 기능의 민영화를 추진했으며, 현재는 지주회사인 닛폰유세이와 자회사인 닛폰유빈(日本郵便), 유초은행, 간포세이메이 등으로 분할돼 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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