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왕실 캐머런 전 총리 공개 질책…'헌정상 기밀 침해'

입력 2019-09-20 10:45
영 왕실 캐머런 전 총리 공개 질책…'헌정상 기밀 침해'

(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가 지난 2014년 9월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주민투표를 앞두고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영국 왕실로부터 이례적인 질책을 받았다.

버킹엄궁은 캐머런 총리가 민감한 헌정 문제에 대해 엘리자베스 여왕과 나눈 사적인 대화를 공개한 데 명백한 불쾌감과 당혹감을 표명했다고 일간 더타임스가 20일 보도했다.

캐머런 전 총리는 자신의 회고록 '기록을 위해서'(For The Record) 발간을 앞두고 19일(현지시간) 공영 BBC에서 방송되는 '캐머런의 시절' 프로그램에서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주민투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캐머런 전 총리는 투표를 앞두고 분리독립 찬성 지지율이 더 높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총리실이 큰 공포에 사로잡혔다고 회고했다.

이에 캐머런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하고, 여왕 비서와 대화를 나눴으며 그러나 여왕에게 부적절하거나 헌법에 위반되는 요청은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총리실의 요청이 있고 난 뒤 실제 여왕은 이후 스코틀랜드 밸모럴 영지에 있던 교회 밖에서 지지자들에게 "미래에 대해 매우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영국 왕실이 캐머런 전 총리의 발언에 대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공개적 질책을 표명한 것은 최근 브렉시트 및 의회 정회를 둘러싸고 여왕이 정치에 말려들 가능성을 우려한 때문으로 보인다고 더타임스는 지적했다.

아울러 이처럼 민감한 시기에 여왕과 총리 간 전통적인 비밀스러운 관계가 손상되고 있다는 우려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더타임스는 영국 헌정 사가(史家)들을 인용, 전 총리를 공개 질책하기로 한 왕실의 결정이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면서 왕실과 정치인들 간의 관계를 고려할 때 왕실의 입장표명이 '놀라울 정도로 직설적'이라고 평가했다.

캐머런 전 총리의 대화 공개는 여왕과 총리를 잇는 헌정 유대의 사적인 성격을 위배하는 것이라는 사가의 평가를 덧붙였다.

정부와 국가 수반간 관계는 가장 특수한 관계로 고도의 기밀성이 유지돼야 하는데 캐머런 전 총리가 이를 깨트렸다는 지적이다.

왕실 소식통들은 캐머런 총리의 대화 공개가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 5주년과 두 번째 분리독립 주민 투표 분위기가 고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더타임스는 전했다.

영국 왕실은 근래 여왕의 정치 개입 논란 외에 최근 요크 공 앤드루 왕자가 제프리 엡스타인 성매매 스캔들에 연루됐다는 의혹과 윌리엄-해리 왕자 간 불화설 등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yj378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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