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사우디 공격 전면 부인…'美 압박 심각' 판단했나(종합)
"사우디 석유시설 공격 안했다" 美에 이례적 공식 전문
이란 국영방송, 통킹만 사건 언급…美 공격 명분 쌓기 분석한 듯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이란 정부가 사우디아라비아의 핵심 석유시설 공격에 대해 전혀 관련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5, 6월 오만해에서 발생한 유조선 피격 사건을 비롯해 미국과 사우디가 이란을 공격의 주체 또는 배후로 지목한 적이 비일비재했지만 이란의 이번 대응은 과거와 사뭇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만큼 이란도 이번 사건의 여파와 심각성을 여느 때와는 다르게 인식한다는 방증인 셈이다.
사우디의 핵심 석유시설 피격으로 사우디의 산유량 절반이 차질을 빚는 전례없는 사건이 터지자 친이란 예멘 반군은 즉시 자신의 무인기 편대 작전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미국과 사우디는 이란의 '직접 공격'이라고 압박했고, 미국 언론은 미국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공격 원점이 이란 남서부 본토이고 무기도 무인기뿐 아니라 여러 발의 크루즈 미사일이라고 보도했다.
사우디 국방부는 18일(현지시간) 이번 공격에 쓰인 이란 무기(미사일)의 부품을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이란은 미국의 이익대표부 역할을 하는 주테헤란 스위스대사관에 이번 공격과 무관하다는 내용의 외교 전문을 미국 정부에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란 국영 IRNA통신은 "이란 정부가 이 전문에서 이란이 이번 공격에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라며 "이란에 적대적인 조처를 한다면 즉시 대응하고, 이는 구두 경고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명시했다"라고 보도했다.
이란은 미국에 항의할 때 보통 유엔 주재 대표부를 통했지만, 적성국 미국을 수신인으로 하는 공식 전문을 보낸 것은 드물다.
이 전문은 공격 발생 이틀 뒤인 16일 오후 스위스 대사관에 접수됐다. 미국 정부는 공격 발생 이튿날인 15일부터 이란이 연관됐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18일 내각회의에서 "사우디의 석유시설 공격은 예멘에 대한 군사적 침략에 예멘 정부(반군)가 대응한 것이다"라며 "미국과 사우디는 이를 경고와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아미르 하타미 이란 국방장관도 이날 "이번 사안은 매우 명확하다"라며 "분쟁의 한쪽 당사국인 예멘 정부(반군)가 분명히 자신의 작전이었다고 밝혔고, 예멘은 그런 작전을 할 만한 충분한 군사력을 보유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멘 반군이 1천200㎞ 거리의 아랍에미리트(UAE) 공항을 지난해 무인기로 공격했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이란의 직접 공격을 의심하는 강력한 근거로 예멘 반군의 무인기 기술로는 예멘에서 1천㎞가 넘는 거리의 사우디 석유시설을 공격할 수 없다는 점이 거론되는 것을 반박한 것이다.
이란의 이런 대응을 두고 중동 정세를 뒤흔들 큰 사건이 발생하자 이란이 미국이 군사행동을 실행할 확률을 상당히 높게 판단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과 예멘 반군이 극구 부인하는 데도 미국이 이란 본토에서 쏜 크루즈 미사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동종의 무기'로 공격 원점인 이란을 직접 공격하려는 명분을 쌓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미국은 2017년 4월 지중해에서 시리아 정부군 공군기지로 토마호크 미사일 59발을 발사한 적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언론이 공격 원점으로 지목한 이란 남서부 미사일 기지를 교전 규칙에 근거해 크루즈 미사일로 정밀 타격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6월 미국의 무인정찰기가 이란의 대공미사일에 격추됐을 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란에 대한 군사 대응을 언급하면서 자신이 작전 개시 10분 전 이를 취소했다면서 이란에 '구두 경고'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양국의 긴장은 완화되지 않았고, '사우디판 9·11'로까지 불리는 이번 초대형 사건을 미국이 또 한번 묵과하기는 어렵게 됐다.
6월 미국 무인정찰기 격추 때는 이란 영공을 침범했다는 논란이 오갔지만, 이번에는 최대 원유 수출국 사우디의 산유량 절반이 타격받아 국제 에너지 공급이 불안해지면서 미국은 이란에 강경하게 대응할 수 있는 우호적인 국제 여론과 명분도 확보하게 됐다.
이란 국영방송 프레스TV는 16일 이란의 책임으로 돌리는 미국의 여론전을 '이란판 통킹만 사건'으로 빗대면서 이란을 공격하려는 미국의 자작극이라는 음모론까지 제기했다.
지난해 5월 미국의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탈퇴로 불거진 미국과 이란의 대치가 첨예해진 이후 이란이 미국의 군사 공격 가능성을 가장 심각하게 본다는 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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