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치자"는 산은에 수은 "기웃대지 말라"…험악해진 이웃사촌
이동걸 "합병" 발언 후폭풍…수은 "낙하산 인사가 무능 덮으려 해"
(서울=연합뉴스) 홍정규 기자 =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여의도공원 서편에 나란히 본점을 두고 있다.
6개로 구획된 부지 중 중소기업중앙회관을 사이에 두고 산은이 4개 구역, 수은이 1개 구역을 이웃해 쓴다.
그런데 추석 연휴 직전에 '이웃사촌'의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이동걸 산은 회장이 두 기관의 합병을 주창하면서다.
이 회장은 취임 2주년을 맞은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이 문제를 꺼냈다. 질의응답이 아닌 인사말을 통한 작심 발언이었다.
"정책금융이 많은 기관에 분산돼 있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운을 뗀 이 회장은 "정책금융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며 '산·수 합병론'을 폈다.
그는 "앞으로 면밀히 검토해 산은과 수은의 합병을 정부에 건의해 볼 생각"이라며 "산은과 수은이 합병함으로써 훨씬 더 강력한 정책금융기관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업금융 지원과 구조조정 등 분야에서 두 기관의 기능은 일부 겹친다. 이를 합쳐 인력과 예산을 효율화하고 '규모의 경제'를 구현하겠다는 게 이 회장의 구상이다.
그는 합병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정부와 협의가 안 된 사견"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실제로 각 기관을 감독하는 금융위원회나 기획재정부와 사전 교감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파문이 이는 것은 이 회장이 금융권의 대표적 '친문(친문재인) 인사'로 꼽히고 있어 그의 발언이 갖는 무게감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에서다.
갑작스럽게 합병 대상으로 지목된 수은 내부에선 격렬한 반발 기류가 형성됐다. 두 기관의 역할이 다를 뿐 아니라, 국제금융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반대 논리도 벌써 나온다.
수은 관계자는 15일 "수은이 축적해 온 대외거래 전문성이 침식될 우려가 있다"며 "오히려 산은의 대외금융 부문을 수은에 넘기는 게 효율성을 높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특히 수은이 산은에 합쳐질 경우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공적 수출신용기관(ECA) 지위가 위협당하고, 자칫 수출 보조금 지원 대출이 막힐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ECA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 유일하게 허용되는 중장기 수출금융 기관인데, 수은이 산은에 합쳐지면 유럽과 일본 등 경쟁국에서 이를 문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수은 관계자는 "독일의 경우 기존의 기관에서 ECA를 분리했다"고 전했다.
수은은 이 회장이 일방적으로 합병을 공론화한 것도 부적절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수은은 전직 행장(은성수)이 금융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수장 공백 상태다.
수은 노동조합은 성명을 내고 이 회장에 대해 "현 정권에 어떤 기여를 해 낙하산 회장이 됐는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정책금융 역할에 대해 이래라저래라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비난했다.
노조는 "이 회장은 (두 기관의) 업무영역과 정책금융 기능에 관한 논의로 본인의 경영능력 부재와 무능력을 감추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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