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사라졌습니다"…삶의 터전 잃은 바하마 주민들 절망(종합)
총리 "사망자 30명으로 늘어"…최대 '수천명' 실종상태여서 피해 급증우려
"8조4천억원 재산피해 추정"…美해안경비대·英해군 등 구조작업 동참
(멕시코시티·서울=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하채림 기자 = 초강력 허리케인 '도리안'이 부리는 시속 300㎞ 강풍을 버티기에 여섯살 소년 에이드리언의 몸집은 너무 작았다.
거센 바람은 범람을 피해 지붕에 올라가 웅크린 에이드리언을 휘감아 물속으로 내팽개쳤다.
동생을 마지막으로 본 리처드 존슨은 "바람이 꼬마를 날려버리리라는 걸 순식간에 알아차렸다"며 "상황을 보니 희망이 안 생긴다"며 고개를 떨궜다고 로이터통신이 5일(현지시간) 전했다.
휴버트 미니스 바하마 총리는 이날까지 확인된 사망자가 30명이라고 CNN에 밝혔다. 전날 바하마 정부가 집계한 20명에서 하루 만에 10명 늘어난 것이다.
인명 피해 규모는 앞으로 급증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우려된다.
지난 1일 도리안이 강타한 바하마에서 현재까지 보고된 실종자는 '수천 명'에 이르는데, 이들 상당수가 에이드리언과 같은 아이들이다.
조이 지브릴루 관광항공부 장관은 CNN 방송에 "그야말로 수백명에서 최대 수천명까지 여전히 실종 상태"라고 말했다.
강풍과 폭우가 잦아든 후 처참하게 부서진 집과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마을을 눈으로 확인한 바하마 주민들은 망연자실했다.
도리안이 처음 상륙한 아바코섬 마시하버에 사는 레이먼드 킹은 로이터에 "내 아바코섬이 모두 사라졌다. 은행도 가게도 아무것도 없다. 시신들만 남았다"고 절망했다.
카리브해 섬나라 바하마가 도리안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면서 최고 시속 297㎞의 강풍을 동반했던 초강력 허리케인이 입힌 막대한 상처가 어느 정도인지도 속속 확인되고 있다.
도리안 상륙을 앞두고 잠시 집을 떠나 대피소로 옮겼던 주민들은 자신의 보금자리가 며칠 만에 진흙으로 뒤덮인 잔해만 남은 것을 확인해야 했다.
지붕 위나 다락에 갇혀 며칠간 사투를 벌이다 구조된 이들도 폐허가 돼버린 집 밖 풍경에 충격을 받았다.
돌보던 89세 노인과 닷새 동안 물바다가 된 집에 갇혀 있다가 이웃에 구조된 간병인 캐스린 카트라이트(58)는 처참한 마을 모습에 말을 잃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이들을 구조한 이웃 벤 앨런은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아바코는 누구나 오고 싶어하는 가장 아름다운 장소였는데 이젠 아니다"라며 씁쓸해했다.
피해지역을 둘러본 미국 CNN 방송의 폴라 뉴턴 기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원래 있던 것의 90%가 망가졌다"고 말했다.
아직 피해 상황이 정확히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피해가 컸던 아바코섬과 그랜드바하마섬 전체 주택의 절반 가까이가 허리케인으로 파손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재산관리업체 캐런 클라크 앤드 컴퍼니는 자동차와 기반시설을 제외한 주택 등의 재산 피해만 70억 달러(약 8조4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피해 지역이 리조트와 골프장 등으로 유명한 관광도시였던 것을 고려하면 섬이 다시 제모습을 갖추고 관광객을 다시 맞을 때까지의 관광산업 손실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했다.
인구 40만 명의 바하마가 감당하기 힘든 대형 재난 상황에 빠지자 국제 사회의 도움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유엔은 바하마 인구의 20%에 가까운 7만명이 긴급하게 구호가 필요한 상태라고 보고했다.
미국 해안경비대와 영국 해군이 일찌감치 구조와 구호작업에 동참한 데 이어 자메이카도 피해지역 안전을 위해 군 병력 150명을 파견했다.
미니스 총리는 "역사적인 비극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며 외국 관광객들을 향해 바하마를 계속 찾아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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