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하원 브렉시트 연기 법안 가결…'노 딜' 위험 사라졌나(종합)

입력 2019-09-05 17:52
英 하원 브렉시트 연기 법안 가결…'노 딜' 위험 사라졌나(종합)

상원 통과·여왕 재가 거쳐야 효력…하원 정회 전 절차 마쳐야

조기 총선 가능성 여전…시기 놓고 야당 내에서도 분열



(런던=연합뉴스) 박대한 특파원 = 영국 하원이 4일(현지시간) 브렉시트(Brexit) 3개월 추가 연기를 뼈대로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오는 10월 31일 '노 딜'(no deal) 브렉시트가 벌어질 가능성은 한층 낮아졌다.

브렉시트 지지론자를 등에 업고 총리직에 오른 존슨 총리로서는 취임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노 딜' 브렉시트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닌 데다 조기 총선 개최, 유럽연합(EU)과의 협상 등 변수가 산적한 만큼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분석이다.

◇ '노 딜' 가능성 작아졌지만 여전히 남아 있어

이번 법안 통과로 존슨 총리는 향후 EU와의 브렉시트 협상에서 '노 딜'도 불사한다는 그동안의 강경 전략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이날 하원을 통과한 유럽연합(탈퇴)법은 EU 정상회의 다음날인 오는 10월 19일까지 정부가 EU와 브렉시트 합의에 도달하거나, '노 딜' 브렉시트에 대한 의회 승인을 얻도록 했다.

만약 둘 다 실패할 경우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EU 집행위원회에 브렉시트를 2020년 1월 31일까지 3개월 추가 연기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내도록 했다.

하원을 통과한 법안은 다시 상원이라는 고비를 넘겨야 한다.

당초 법안 처리 지연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상원 문턱을 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실제 EU 탈퇴를 지지하는 보수당 상원의원들은 이날 저녁 상원 의사일정과 관련해 100여개가 넘는 수정안을 제출하면서 지연 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상원이 오는 6일 오후 5시까지 유럽연합(탈퇴)법을 처리해 하원으로 송부하는 내용의 의사 일정에 합의하면서 법안 통과 가능성이 커졌다.

상원이 예고한 대로 6일까지 수정안을 포함한 '노 딜' 방지법을 처리해 하원으로 다시 보내면 하원은 오는 9일에 최종 표결을 하게 된다.

법안이 예정대로 여왕의 재가까지 받으면 9∼12일 사이 시작되는 의회 정회(prorogation) 전에 입법이 마무리되고 정식 법률로서 효력을 갖게 된다.

이에 따라 다른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존슨 총리는 오는 10월 17일 열리는 EU 정상회의에서 브렉시트 3개월 추가 연기를 요청해야 한다. 10월 31일 '노 딜' 브렉시트가 발생할 위험은 크게 준 셈이다.



다만 영국이 브렉시트 추가 연기를 요청하더라도 EU가 이를 받아들일지는 또다른 문제다.

브렉시트 철회는 영국이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지만 연기는 영국을 제외한 EU 27개 회원국이 모두 동의해야 한다.

EU 내에서는 계속된 연기로 인해 브렉시트가 EU 내 다른 이슈 논의를 가로막는 것에 비판적인 회원국도 있다.

영국의 3개월 연기에 대해 EU가 얼마만큼 연기할지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앞서 지난 4월 EU 정상회의에서도 브렉시트를 연말까지 연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지만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반대로 10월 31일까지 연기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 조기 총선 가능성 남아 있어…시기가 관건

존슨 총리는 하원의 유럽연합(탈퇴)법 통과 직후 의회 해산 및 조기 총선 개최라는 승부수를 걸었다.

영국 '고정임기 의회법'(Fixed-term Parliaments Act 2011)에 따르면 조기 총선이 열리기 위해서는 하원 전체 의석(650석)의 3분의 2 이상, 즉 434명의 의원이 존슨 총리가 내놓은 조기 총선 동의안에 찬성해야 한다.

존슨 총리의 동의안은 그러나 298표의 찬성을 얻는 데 그쳐 부결됐다.

오는 10월 15일 조기 총선을 개최, 하원 내 과반을 확보한 뒤 10월 17일 EU 정상회의에서 브렉시트 합의를 추진한다는 존슨 총리의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스카이 뉴스, 공영 BBC 방송 등은 그러나 여전히 조기 총선이 열릴 수 있는 방안은 남아 있다고 전했다.

존슨 총리는 이날 부결 직후 다시 조기 총선 동의안을 내놓을 수 있다는 입장을 시사했다.

다만 같은 회기 내 동일한 사안을 표결에 부칠 수 없다는 의회규약으로 인해 '고정임기 의회법'에 따른 조기 총선 동의안 상정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앞서 존 버커우 하원의장은 이같은 규약을 내세워 테리사 메이 전 총리가 같은 내용의 브렉시트 합의안을 의회 승인투표에 부치는 것을 제한한 바 있다.

다만 조기 총선 동의안에도 이를 적용할 것인지에 관한 버커우 의장의 입장은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야당이 정부 불신임안을 제출하는 방법도 있다.

'고정임기 의회법'에 따르면 야당의 정부 불신임안은 하원 과반의 찬성을 얻으면 통과된다.

정부 불신임안이 하원을 통과하면 14일 동안 새로운 내각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집권 보수당은 물론 야당이 14일 이내 새로운 정부를 구성해 하원에서 과반 신임을 받지 못하면 조기 총선이 열리게 된다.

일각에서는 조기 총선 개최를 위해 존슨 총리가 자신의 정부에 대해 직접 불신임안을 제출하는 방안도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의회 3분의 2 지지가 필요한 '고정임기 의회법'에 따른 조기 총선 동의안 가결보다는 과반 지지만 확보하면 되는 '한 줄짜리 법안'(one-line bill) 통과를 추진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예를 들어 '고정임기 의회법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10월 15일 총선을 열 것'이라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뒤 통과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야당 의원들이 브렉시트 추가 연기 등 부대조건을 담은 수정안 또한 제출할 수 있다는 점이 정부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존슨 총리가 사퇴할 경우에도 총선이 열릴 수 있는 조건이 완성된다.

내각회의 참석자 중 한 명은 일간 더타임스에 존슨 총리가 EU 정상회의에서 브렉시트 연기를 요청하느니 차라리 사퇴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변수는 노동당을 비롯한 야당의 입장이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 조 스위슨 자유민주당 대표 등은 그동안 조기 총선 개최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다만 '노 딜' 브렉시트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하원을 통과한 유럽연합(탈퇴)법이 '여왕 재가'까지 완료한 뒤에 조기 총선 개최에 응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조기 총선 시점이다.

코빈 대표의 경우 일단 유럽연합(탈퇴)법이 효력을 갖게 되면 '노 딜' 위험이 현저하게 주는 만큼 존슨 총리가 제안한 10월 15일 조기 총선 개최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노동당 내 일부에서는 10월 31일 예정된 브렉시트가 확실히 연기된 후인 11월에 총선을 개최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판단이다.

섣불리 브렉시트 전 총선을 개최했다가 존슨 총리에게 과반 의석을 선물할 경우에는 오히려 '노 딜' 브렉시트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존슨 총리의 조기 총선 동의안 재발의 여부, 총선 개최 시기에 관한 노동당 내 의견 일치 여부 등 여러 변수에 따라 총선이 개최될지, 언제 열릴지 등이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pdhis9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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