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협정 합의에도 난제 수두룩…갈 길 먼 아프간 평화 정착
철군 세부 일정 불확실…탈레반 '테러 근절' 약속 확인 어려워
아프간 정파 간 갈등 심각…"새로운 내전 발발 우려"
IS 세력 확장 기도…탈레반 복귀 후 여성 인권 탄압 우려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무장반군 조직 탈레반이 최근 평화협정 초안에 합의했지만, 실질적인 평화 정착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구체적인 미군 철군 시기, 철군 후 빚어질 전력 공백 우려, 아프간 정파 간 갈등, 여성 인권 문제, 이슬람국가(IS) 세력 확장, 미국 내 반발 기류 등 각종 난제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 철군은 언제 어떻게 마무리? 테러조직 근절 확인은 어떻게?
외신에 따르면 현재 아프간에는 미군 1만4천명가량과 그 외 수천 명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군이 주둔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철수 시기와 방법은 향후 평화협정 현실화를 위한 핵심 이슈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평화협정 초안에는 미국이 135일 이내에 벙력 5천여명을 철수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미군을 8천600명으로 줄인 뒤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따라 결정을 내리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단계적으로 철수가 진행되다 보면 그 과정에서 여러 예상치 못한 변수가 불거질 공산이 크다. '135일 이후' 구체적인 철수 일정은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이다.
특히 미국은 철군하더라도 정보 담당 인력은 남기기를 원하지만, 탈레반은 예외 없는 전원 철수를 바라기 때문에 이 점이 갈등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탈레반은 아프간이 국제 테러조직의 은신처가 되는 것을 막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제대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뉴욕타임스(NYT)는 "그런 약속을 어떻게 지켜지게 할지 세부 방안은 명확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미군 철수와 관련한 미국 내 비판 여론도 관건이다.
시리아 주둔 미군 수의 7배가 투입된 아프간에서 미국이 갑자기 철수하면 그간 미국이 현지에서 공들인 테러 억제 노력 등이 허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에 미국은 많은 것을 포기할 준비가 돼 있지만, 탈레반은 잃을 게 거의 없는 협상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하기도 했다.
조지프 던퍼드 미국 합참의장도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에서 미군의 아프간 전면 철수 논의는 아직 이르다고 말하기도 했다.
평화협정에 종전선언이 포함되지 않은 점도 향후 변수가 될 수 있다.
잘메이 할릴자드 아프간 평화협상 관련 미국 특사는 이 협정의 목표는 종전이 아니며, 공식적인 휴전협정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휴전 협정은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등 아프간인들끼리 협상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 정파 간 갈등 여전…또 다른 내전 우려
탈레반은 그간 "미국의 꼭두각시인 아프간 정부와 머리를 맞댈 수 없다"며 아프간 정부와 직접 협상을 거부해왔다.
이로 인해 이번 9차에 걸친 평화협상에서도 아프간 정부는 끼지 못했다.
하지만 탈레반은 협상 과정에서 미국의 주장을 받아들여 앞으로 아프간 정부 측과 협상 테이블을 마련하겠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약속이 구체적으로 실현될지는 미지수라는 분석이 많다.
20년 가까이 전쟁과 테러로 서로를 공격한 양측이 하루아침에 손을 잡고 정부를 구성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오는 28일로 예정된 아프간 대선에 탈레반이 참여할지, 만약 탈레반 없이 대선이 치러진다면 향후 범아프간 정부 수립은 어떻게 할지도 풀어야 할 숙제다.
이와 관련해 가니 대통령은 대선 강행 의지를 보이지만, 탈레반은 강력하게 반대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탈레반은 이번 대선과 관련해 "선거를 보이콧하라"고 아프간 국민을 상대로 경고 성명을 내기도 했다.
아울러 탈레반은 이슬람 근본주의가 기반이고, 아프간 정부는 친미 정책을 바탕으로 세속주의와 민주주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양측의 지향점도 완전히 다르다.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이 이번 평화협정을 통해 그들의 정식 국호인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에미리트'로 불리려 한다는 점에 반대하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또 외국군이 모두 빠져나가고 나면 전투력이 앞서는 탈레반이 아프간 정부를 무너뜨리고 아프간 전역을 다시 장악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탈레반은 2001년 이후 현재 가장 힘이 센 상태라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로이터는 아프간 정부와 미국 국가안보 관계자 사이에서는 미군 철수로 아프간이 새로운 내전 상태로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 호시탐탐 세력 확대 노리는 IS
아프간 내 이슬람국가(IS)의 움직임도 평화 정착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2014∼2015년부터 아프가니스탄에 본격 진출한 IS는 현지에 'IS 호라산 지부'를 만드는 등 존재감을 과시해왔다. 호라산은 이란어로 '해뜨는 곳'을 뜻하며 아프간·파키스탄·인도 일부를 아우르는 지역을 뜻한다.
아프간 IS는 지난해 5월 5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카불 관공서 자살폭탄 공격 등 여러 건의 잔혹한 테러를 저질렀다.
이슬람 수니파인 IS는 시아파를 배교자로 삼아 처단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간 탈레반과 종종 대립해왔다.
이런 배경 속에 IS는 최근 미국과 탈레반 간 평화협상 기류를 틈타 영향력 확대에 더욱 힘쓰고 있다.
지난달 17일에는 카불 서부 결혼식장에서 자살폭탄테러를 감행 무려 63명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다.
미국과의 협상에 반대하는 탈레반 내 강경파가 조직에서 탈퇴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도 IS에는 호재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최근 수천 명의 전사를 휘하에 둔 탈레반 지휘관들이 자신들이 전장에서 어렵게 얻은 전과를 지도부가 미국과 협상함으로써 헛되게 하려 한다고 비판하고, 이들 가운데에선 탈레반 탈퇴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으로서는 아프간 인근에서만 주로 활동하는 탈레반보다는 국제적으로 무차별 테러를 저지르는 IS가 앞으로 더 큰 골칫거리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IS는 지난 2년여간 미국과 아프간 정부군의 막대한 지상 및 공중 공격으로 동부지역의 근거지에서 패퇴했다는 게 아프간 정부의 공식 입장이지만 실제로 IS는 최대 5천여명의 조직원을 유지하며 점령지를 통치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 탈레반 복귀가 두려운 아프간 여성
아프간에서 탈레반의 영향력이 강해지면 현지 여성의 인권도 더 위협받을 수 있다.
이슬람 샤리아법(종교법)에 따른 국가 건설을 주장하는 탈레반은 과거 1990년대 후반 집권기에 여자 어린이 교육 금지, 공공장소 부르카(여성의 얼굴까지 검은 천으로 가리는 복장) 착용 등 여성의 삶을 강하게 규제했다.
여성들은 이 밖에도 강간 등 여러 범죄에 노출됐고 강제결혼이 횡횡했다. 아프간 여성에게는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기인 셈이다.
지금 카불에 사는 여성 상당수는 부르카를 착용하지 않으며 화장한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며 외출하기도 한다.
외신들은 탈레반과의 평화협상 움직임이 아프간 여성에게는 오히려 공포감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프간 여성들은 지난 3월 카불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탈레반 치하에서 가족을 잃는 등 여러 고통을 겪었다며 "우리도 평화를 원하지만, 여성의 권리를 희생해서는 안 된다"고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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