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커지는 디플레 우려, 안일하게 대응해선 안돼
(서울=연합뉴스)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역대 최저치인 0.0%를 기록했다. 공식 발표는 이렇지만 수치를 반올림하기 이전으로 돌려보면 -0.038%로 첫 마이너스다. 농·축·수산물 가격과 국제유가가 내린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우리나라는 1965년부터 소비자물가 통계를 내기 시작했는데 이처럼 낮은 상승률은 없었다. 물가가 낮으면 일단 소비자들은 반가워한다. 수십년간 고물가에 시달리던 서민들이다 보니 물가가 안 오르면 살만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정책당국자들이나 경제학자들이 이 통계를 보는 시각은 착잡하다.
경제학에서 물가가 오르는 건 인플레이션, 물가가 내려가는 건 디플레이션이라고 한다. 인플레가 심하면 소비자들이 힘들어하는 건 익히 알고 있다. 반대로 디플레면 즐거워해야 할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경제학자들은 디플레이션을 더 우려한다. 경제가 활력을 잃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디플레이션이라고 모두 안 좋은 건 아니다. 기술혁신을 비롯해 긍정적 요인으로 비용이 절감돼 물가가 내려갔다면 경제는 활력을 얻게 된다. 우려해야 할 것은 수요감소 등 부정적 요인에 따른 디플레이션이다. 이때는 돈 가치가 점점 올라가기 때문에 기업이나 개인이 소비나 투자를 줄이게 되며 이는 생산감소, 재고 증가 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는다. 먹고살기 힘들게 된다는 뜻이다.
이런 우려가 나오자 한국은행이 재빨리 대응에 나섰다. 한은은 지금 물가상승률만 보고 디플레이션으로 단정하긴 곤란하며, 연말에는 물가가 빠르게 반등하고 내년에는 1% 수준으로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요 측 물가 압력이 약화한 영향도 있지만 농·축·수산물과 석유류 등 공급 측 요인과 정부의 물가안정 노력도 물가를 낮추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평가하는 디플레이션 취약성 지수(DVI)가 한국은 '매우 낮음' 단계에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한은의 설명은 타당해 보인다. 그저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급히 낙관적인 해석을 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나친 우려도 안 될 일이지만 현 경제 상황을 좋게만 봐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물가 상승률이 0%대로 몇 달 간 지속하는 것은 경제활력이 떨어져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한은의 분석 대로 아직 디플레이션을 우려할 정도는 아닐지라도 시급히 활력을 되찾아야 한다. 3일 발표된 한은의 2분기 경제성장률 잠정치는 전 분기 대비 1.0% 올랐다. 그 기여도를 따져보면 정부가 1.2%포인트지만 민간은 -0.2%포인트다. 민간 부문이 성장세를 깎아 먹는데 정부가 재정으로 떠받친 모양새다. 성장은 기본적으로 민간, 즉 기업이 이끌어야 하는데 지금은 거꾸로 됐다. 이런 양상은 오래가지 못한다. 더욱이 하반기 경제는 더 안 좋을 가능성이 크다. 미중 무역전쟁, 한일 갈등 등으로 대외여건이 매우 불안한 탓이다. 안일한 대응으로 해결될 상황이 아니다. 비상한 마음으로 경제가 활력을 찾도록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