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전쟁배상]② 추가 배상 이견속 '사죄는 사죄' 이어가
폴란드, 그리스로부터는 추가배상 요구받아
배상 문제 이견 식민지배 문제서도 "역사적 책임과 의무 가져"
베를린서 폴란드 희생자 등을 위한 추모관 설립 논의 활발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독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범죄에 대한 배상과 사죄에서 일본과 달리 모범사례로 꼽힌다.
기회만 닿으면 과거사에 대한 참회를 이어왔다. 국가 배상을 해왔을 뿐만 아니라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까지 관련 기업과 공동으로 재단을 만들어 배상했다.
그러나 폴란드와 그리스에 대한 피해 배상 문제는 여전히 독일의 아킬레스건이다.
이미 배상이 이뤄지기도 했지만, 이들 국가는 충분치 않다며 추가 배상을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는 지난달 29일 독일 베를린을 찾아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자리에서 배상 문제를 꺼냈다.
지난 4월 독일을 상대로 배상 청구 결의안을 의회에서 처리한 알렉시스 치프라스 정권의 입장을 이어받은 것이다.
폴란드도 우파 포퓰리즘 성향의 법과정의당(PiS)이 집권한 이후 추가 배상을 꾸준히 주장했다.
야체크 차푸토비치 폴란드 외무장관은 지난달 19일 dpa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폴란드는 다른 전쟁 피해국과 달리 독일로부터 충분한 배상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1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리는 2차 세계대전 발발 80주년 행사를 앞두고 재차 독일을 압박한 것이다.
폴란드 의회는 나치 독일의 점령 기간 본 피해를 산출하기 위한 위원회를 만들기도 했다.
이들 국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특히 폴란드는 최대 피해국이다.
유대계 300만명을 포함한 폴란드인 600만명이 숨졌고, 수도 바르샤바는 폐허가 됐다.
폴란드의 배상 요구에 독일은 1990년 1억5천만 마르크를 배상 명목 등으로 지급한 데다, 법적으로도 배상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폴란드 정부가 소련의 영향 아래 있던 1953년 소련과 동독의 배상면제협정 이후 동독으로부터 배상받을 권리를 포기하기로 한 점을 법적 근거로 든 것이다.
당시 폴란드는 소련의 압박으로 자국 동부지역 일부를 소련에 넘겨주는 대신, 동독 동부의 오데르-나이세강 동쪽 지역을 할양받는 방식으로 전후 배상 문제를 매듭짓기로 했다.
그리스도 나치 독일의 점령 기간인 1941년∼1944년 은행에서 강제로 막대한 자금을 강탈당했다.
8만명이 나치에 의해 희생되고, 25만명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사망했다. 수만 명의 유대계 그리스인들은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리스 의회는 2016년 보고서를 통해 2차 대전 당시 나치 점령으로 인한 피해 규모가 최소 2천890억 유로로 추산한 바 있다.
하지만 독일은 1960년 그리스와의 협정을 통해 배상 명목으로 1억1천500만 마르크를 지불했기 때문에 배상 문제가 일단락됐다는 입장이다.
독일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 문제에서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독일은 당시 20세기 초 독일 식민지였던 남서아프리카(현 나미비아)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헤레로족 2만4천 명∼10만 명, 나마족 1만 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UN은 1985년 휘태커 보고서를 통해 20세기 최초의 집단학살로 규정했다.
헤레로족과 나마족의 후손들은 몇 년 전 미국의 뉴욕 법원을 통해 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독일 정부는 소송 절차가 독일의 주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소송에 협조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독일은 폴란드, 그리스와 피해 배상에서 이견을 보이지만 전쟁범죄에 대한 끊임없는 사죄를 해왔고, 사회적으로도 과거사를 기억하기 위한 여러 작업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일본의 행보와는 사뭇 다르다.
지난달 초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열린 '바르샤바 봉기' 75주년 기념식에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이 참석해 과거사를 참회했다.
역시 2차 세계대전 발발 80주년 기념식에도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참석한다.
최근에는 독일 시민사회와 정치권 일각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관을 베를린에 세우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해 옛 동독 반체제인사로 동독의 마지막 외무장관을 지낸 마르쿠스 멕켈은 폴란드의 희생자들뿐만 아니라 집시 희생자들, 벨라루스 지역의 희생자들 등 사회주의 체제 시절 상대적으로 전쟁 피해 문제에서 소외됐던 동유럽의 희생자들을 모두 추모하기 위한 기념관을 제안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당국이 우크라이나에서 나치에 희생당한 유대인들을 위한 기념물을 베를린에 세워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와 관련해 독일 외무부는 우크라이나에서의 유대인 학살을 기억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200만 유로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더구나, 독일의 주요 박물관과 미술관에서는 전쟁 당시 나치가 유대인과 점령국으로부터 강탈한 작품들을 돌려주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식민지배에 대한 청산 문제도 조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독일 사회에서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게르트 뮐러 독일 개발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배상을 요구하는 나미비아의 2개 단체 관계자들과 면담을 했다.
뮐러 장관은 "식민지 역사에 대해 독일은 역사적인 책임을 갖고 있고, 그에 따른 의무를 갖고 있다"면서 나미비아와 교육, 보건, 에너지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여기에 통일 후 독일의 최대 건축 프로젝트로, 베를린의 옛 프로이센 왕궁터에 설립 중인 '훔볼트 포럼'은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담긴 문화 공간으로 꾸며지고 있다.
이진 훔볼트대 정치문화학 박사는 통화에서 "독일이 과거사 배상 및 사죄 문제에서 유대인과 홀로코스트의 맥락에서는 많은 부분이 해결됐지만, 아직 미흡한 부분도 있는데 워낙 피해를 당한 국가와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면서도 "중요한 것은 독일의 주류 정치권과 사회가 일본과는 달리 이런 맹점에 대해 여론을 환기하고 전향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점"이라고 말했다.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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