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체방크, 중·러 고위층 자녀 취업시켜주고 사업 따내
194억원 상당 과징금 내기로 미국 증권거래위와 합의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독일 대형은행 도이체방크가 러시아와 중국의 고위 공직자 자녀를 취업시켜주는 대가로 현지 사업을 따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도이체방크의 미국 해외부패방지법(FCPA) 위반 혐의와 관련해 도이체방크와 합의한 내용을 공개하면서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났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SEC에 따르면 도이체방크는 2006∼2014년 사이 수차례에 걸쳐 외국 정부나 국영기업 고위 인사의 자녀를 자사에 취업시켜주고 사업상 이익을 챙겼다.
예컨대 러시아 정부 입찰에서 번번이 물을 먹던 도이체방크는 고위 당국자의 딸을 취업시키라는 요구를 받아들인 뒤 20억달러(약 2조4천억원) 규모의 채권 발행 건을 따냈다.
이와 관련해 도이체방크 관계자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모스크바에서 취업시키는 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했기에 런던에 취업시켜야 했다"고 SEC에 항변했다.
이렇게 취업한 고위 공직자 자녀 중 상당수는 불성실하거나 능력이 부족한 인물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비슷한 경로로 도이체방크 런던지사에 들어온 러시아 국영기업 중역의 아들은 출근을 제대로 하지 않고 관련 시험에 불합격하는 등 행태를 보여 불과 두 달 만에 해고 여부가 논의됐다.
하지만, 도이체방크는 그를 해고하는 대신 모스크바 지사로 옮겨 두 달 더 근무하도록 했다.
도이체방크는 중국에서도 오탈자와 문법 오류가 가득한 이력서를 직접 교정해주면서까지 현지 회사 임원의 아들을 채용하고, 중국 국영기업 회장의 아들을 자격요건이 미달하는데도 억지로 합격시키는 등 모습을 보였다.
도이체방크는 이런 행위가 범법이란 지적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1천600만 달러(약 194억원) 상당의 과징금을 내기로 지난주 SEC와 합의했다.
도이체방크는 한때 미국 월가의 대형 은행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으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경영 사정이 악화했다.
이 은행은 지난달부터 직원 1만8천명을 감원하고 투자은행(IB) 부문을 축소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트럼프그룹과 장기간 거래하고 대출을 제공해온 도이체방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 정부와 유착했다는 등의 의혹에도 휘말려 있다.
미국 하원은 이 은행을 상대로 트럼프그룹 관련 재무 서류 확보를 추진 중이다. 현지 법원은 이와 관련해 "재무 기록 확보를 위한 의회의 소환장 집행을 막아달라"며 트럼프 대통령 측이 낸 소송을 기각했고, 트럼프 대통령 측은 즉각 항소했다.
1969∼1974년 재임한 리처드 닉슨 이후 미국 대통령들은 납세 신고 자료를 공개해왔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선례를 따르지 않고 재산이나 납세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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