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맞은 한·태]② '리틀 저팬' 태국…韓 기업엔 4차산업이 기회
진출기업 20배 日, 영향력 막강…韓기업, 4차산업으로 日장벽 넘어야
경제사절단 '4차산업 로드쇼' 총력전…'타일랜드 4.0'서 돌파구 모색
(방콕=연합뉴스) 김남권 특파원 = 태국은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개국 중 경제 규모에서 인도네시아에 이어 2위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세계 경제규모 11~12위인 대한민국과 경제협력 관계도 상당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일본의 벽' 때문이다.
일본-태국간 수교 역사는 132주년으로 한·태 수교 역사(61주년)보다 훨씬 길다. 태국 진출 기업 수도 한국이 400개인데 비해 일본은 무려 8천여개다.
이러다 보니 '리틀 저팬'이라고 불릴 정도로 경제 분야에서 일본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올해 1~7월 태국의 교역 순위를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일본(1조767억 바트, 약 42조7천500억원)은 중국(1조4천265억 바트, 약 56조6천300억원)의 뒤를 이어 2위다. 한국은 10위(2천566억 바트, 약 10조1천927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한·태 양국간 수출과 수입, 교역이 모두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고는 하지만, 일본과는 상당한 격차가 있다.
◇ 대일(對日) '절대 열세' 자동차 산업…투자 47분의 1 불과
태국 시장에서 일본의 압도적 우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분야가 자동차다.
태국은 '아시아의 디트로이트'로 불릴 정도로 자동차 산업이 활발하다.
도요타와 혼다 등 일본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가 모두 태국에서 공장을 운영하며 태국 시장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일본차 놀이터'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교도 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태국에서 판매된 103만 대 중 도요타가 31만5천113대로 1위였다. 현대기아차는 불과 5천253대를 팔았다. 이마저도 관광업계 등에서 사용하는 소형 상용차 스타렉스(현지 모델명 H1)가 대부분이다.
대(對) 태국 투자 역시 절대적 열세다.
태국 BOI(투자청) 통계를 보면 올 상반기 태국에 대한 해외 투자 중 일본이 114건, 424억 바트(약 1조6천854억원)로 단연 1위다.
멀찌감치 떨어져 81건, 242억 바트의 중국이 2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14건, 8억9천만 바트로 14위다. 금액으로만 보면 일본의 47분의 1에 불과하다.
교역과 투자 규모에서 이처럼 큰 차이가 나는 이유는 일본 기업의 벽이 그만큼 높아서다.
8천개에 달하는 일본 기업이 웬만한 분야에는 이미 다 자리를 잡고 있어, 국내 기업이 뒤늦게 뛰어들어도 성공할 가능성이 그만큼 낮다.
◇ "타일랜드 4.0 한국에 기회"…'4차산업 한류' 가능할까
그렇지만 태국 시장에서 한국에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경제 전반에 ICT(정보통신기술)를 접목해 미래산업을 육성하는 '타일랜드 4.0' 정책을 태국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타일랜드 4.0'은 오는 2021년까지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AI) 기반 위에 미래자동차·스마트 전자·디지털·로봇·바이오 연료 및 화학 등 미래성장 12대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국가 프로젝트다.
미래성장 12대 산업 중 다수가 한국이 세계 수준에 근접한 기술력을 가진 분야인 데다, 일본이 선점했다고 볼 수도 없다는 점에서 한국으로서는 좋은 기회다.
ICT를 기반으로 한 정보, 의료, 교육, 서비스 산업 등 지식 집약적 산업을 일컫는 4차 산업을 통해 태국 시장에서 일본과 '진검 승부'를 벌여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나릿 트엇사티라삭 BOI 부청장도 지난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타일랜드 4.0' 하에서 태국 시장은 한국에 기회가 열려 있다"고 공감했다.
이런 측면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9월초 태국 방문은 일본의 위세에 눌려 온 기존 태국 시장의 '판'을 흔들 수 있을지를 가늠할 중요한 계기가 될 전망이다.
청와대가 문 대통령의 태국 방문을 설명하면서, 신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양국 간 실질협력 증진 방안을 협의한다고 설명한 것도 이런 측면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경제사절단에 4차 산업 관련 기업이 대거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태국의 한 외교 소식통은 "기존 산업에서 어차피 일본 벽을 넘기 힘들다는 점을 인정하고, 우리가 앞서 있거나 적어도 일본과 동등한 선에서 출발하는 4차 산업 분야에서 우리의 강점을 태국 정부와 산업계에 강력하게 어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런 콘셉트에서 경제사절단이 구성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경제사절단은 특히 '4차산업 로드쇼' 등을 통해 태국이 추진하는 '타일랜드 4.0'에 부합하는 신사업 기술력을 과시함으로써, '4차산업 한류'의 마중물이 되게 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화석연료 자동차 부문에서 '명함조차 못 내민' 현대기아차도 세계적 수준을 인정받는 전기차를 선보이고, 전자·통신 업계도 '타일랜드 4.0' 구현의 핵심 기반인 5G 통신 및 각종 디지털 기술을 펼쳐보일 전망이다.
김현태 코트라 방콕무역관장은 "4차산업 분야의 상생협력을 통해 양국간 경제교류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 일본·중국도 경쟁 준비 박차
다만 일본은 기존 우위를 이어가려, 중국은 태국에서 새시장을 개척하려 각각 적극 나설 태세여서 치열한 격전도 예상된다.
태국이 전기자동차 보급 확산에 적극 나서면서 일본 자동차 업계도 분주하게 움직이는 기류다.
최근엔 미쓰비시 자동차가 2021년 초를 목표로 태국 현지에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PHV)의 생산을 예고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미국에 가로막힌 중국 화웨이는 5G 기술을 앞세워 태국 스마트시티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지난주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 스마트시티 네트워크 콘퍼런스'에서 화웨이는 푸껫의 스마티시티 개발 계획과 관련, '백서'(white paper)까지 공개하면서 본격 참여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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