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란 이라크 민병대 "美, 주둔지·무기고 폭발에 책임"
미군 기지 보복시 이란 공격 '명분' 우려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이란 혁명수비대와 긴밀한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하시드 알사비·PMF 또는 PMU)는 최근 이들의 주둔지와 무기고에서 잇따라 발생한 폭발 사건의 책임을 미국이 져야 한다고 21일(현지시간) 주장했다.
시아파 민병대는 이날 낸 성명에서 "미군이 연쇄 폭발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라며 "오늘부터 벌어지는 모든 사건의 책임을 미군에 묻겠다"라고 밝혔다.
이어 "최근의 폭발 사건은 (미군과 연계된) 공작원이나 현대식 비행체(무인기)를 동원한 작전으로 벌어졌다"라며 "조사 결과 미군이 올해 이스라엘 무인기 4대가 이라크 영공으로 진입해 이라크군 사령부를 겨냥하도록 허가했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한 달간 시아파 민병대가 주둔하는 기지와 무기고 등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대형 폭발이 4차례 났다. 이들 사건의 주체나 배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이라크인 민병대원 1명이 숨지고 이란인 2명을 포함해 수십명이 부상했다.
이들 폭발이 공교롭게 이라크 민병대와 연관된 군 시설에서만 발생하자 단순 사고가 아니라 이들을 노린 표적 공격이라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다.
AP통신은 이달 12일 바그다드 부근에 있는 알사드르 기지 무기고 폭발 사건을 조사한 보고서를 인용해 "초기 조사에서 폭발의 원인으로 제시된 전기 합선이 아니라 정체불명의 무인기를 사용한 폭격이었다"라고 보도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 관리는 AP통신에 알사드르 기지 폭발과 미군은 무관하다고 말했다.
시아파 민병대의 이날 성명에서 "우리는 우리의 기지와 자신을 수중에 있는 무기로 지킬 수밖에 없다"면서 무력 대응을 시사한 대목이 주목할 만하다.
공식 입장을 좀처럼 내지 않는 시아파 민병대가 공개적으로 미국을 공격 주체로 지목하면서 보복 공격 가능성도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이스라엘의 무인기가 이라크에까지 진입했다고 거론한 점은 이란이 직접 개입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시리아 내 이란군 시설을 종종 폭격했으나, 이제 그 전선을 이란의 목전인 이라크까지 넓힌 셈이어서다.
이번 성명을 신호로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가 이라크에 주둔하는 미군 또는 관련 시설을 보복 공격한다면 이는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는 명분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은 시아파 민병대가 이라크의 미국인, 미국 관련 시설, 외교 공관, 미군 또는 기지를 공격하면 이를 이란의 대리 공격으로 간주해 보복하겠다고 수차례 경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5월 이란이 시아파 민병대, 레바논 헤즈볼라 등 대리군을 사주해 중동 내 미군을 공격할 것이라는 징후를 포착했다고 주장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5월 초 바그다드를 방문해 이라크 지도부에 이란 또는 이란을 대리하는 세력의 공격으로 이라크에서 미국인 사망자가 한 명이라도 발생하면 미국이 반격할 것이라는 뜻을 전했다.
이란에 매우 적대적인 존 볼턴 보좌관도 5월 말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이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를 사주해 간접적으로 이라크 주둔 미군을 공격하는 것을 매우 우려한다"라며 "그런 공격이 벌어진다면 쿠드스군의 책임"이라고 경고했다.
미군과 시아파 민병대 사이의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아델 압둘-마흐디 이라크 총리는 지난주 "미군을 포함한 이라크 내 모든 군사 조직은 국방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 독자로 군사 행동을 해선 안 된다"라고 지시했다.
시아파 민병대는 이라크의 시아파 종교 지도자가 사병(私兵) 형태로 보유했던 치안·경호 조직이 모태로, 2014년 이슬람국가(IS) 사태가 발발하자 정부 산하 군조직으로 편성됐다.
이란 혁명수비대의 직접 지원을 받아 IS 소탕에 크게 역할했고 이라크 정규군과 맞먹을 정도로 영향력이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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