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 소녀의 금기 도전…獨 소년합창단 554년 역사 깨질까

입력 2019-08-16 16:27
9살 소녀의 금기 도전…獨 소년합창단 554년 역사 깨질까

3번 입단 도전 실패 후 베를린국립소년합창단 상대 소송

'성별 동등한 권리' vs '예술 자유' 논란 촉발



(서울=연합뉴스) 김기성 기자 = 554년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의 유명 소년합창단이 성 불평등 문제로 송사에 휘말렸다.

9살 소녀의 입단이 잇따라 불허되면서 소녀와 그녀의 엄마가 법에 호소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번 소송은 독일 사회 내 남녀 간 동등한 권리와 예술의 자유 사이에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16일 AP통신과 dpa 등에 따르면 1465년 설립된 베를린국립소년합창단(Berlin State and Cathedral Choir)은 독일 내 가장 유명한 소년합창단으로 손꼽힌다.

이 합창단은 이름에서 보여주듯 설립 이후 소녀를 단원으로 한 명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합창단은 현재도 5살부터 25살 사이 소년과 젊은 남성 약 250명을 단원으로 두고, 베를린대성당은 물론 유럽 전역, 미국, 러시아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며 공연하고 있다.

하지만 입단이 허락되지 않은 9살 소녀와 그 부모가 성차별을 이유로 법적 대응에 나서면서 합창단은 오랜 전통에 위협을 받고 있다.

독일 행정법원 자료에 따르면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이 소녀는 지난 3월 이 합창단의 입단을 위해 오디션을 봤으나 탈락했다.

합창단 측은 탈락의 주된 이유가 성 때문이 아니라며, 소녀가 탁월한 재능과 열의를 발휘하고 소녀의 음성이 소년합창단에 필요한 소리 특성과 어울렸다면 입단이 허용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합창단은 또 소녀의 부모들과는 함께 지내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입장도 피력했다.

소녀는 2016년과 2018년에도 입단 지원서를 냈지만, 당시에는 오디션조차 볼 기회 없이 탈락한 바 있다.

소녀 쪽은 지난 3월 오디션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다. 소녀의 엄마는 딸의 입단이 허용되지 않은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차별이라며, 국가의 지원을 받는 기관이 동등할 기회를 부여할 권리를 위반했다며 딸을 대신해 소송에 나섰다.



이번 사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많은 수가 합창단 쪽에 힘을 실어주는 편이라고 AP통신은 전했다.

이번 문제는 재능 쪽보다는 음색(tone)에 관련된 것이고, 합창단에 남녀를 혼합하는 것은 전통적인 음을 살릴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사회 칼럼니스트인 한나 베스키는 이번 주 유력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에 "누구도 소녀들이 똑같이 노래를 부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며 "다만 음질이 다른 만큼 음악인들과 음악학 연구자들에게 맡겨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베스키는 이어 "그릇된 성 평등을 강요하려는 사람은 전통 자산을 희생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음악학 연구자인 안-크리스티네 메케는 독일 ZDF 방송에 소년들과 소녀들의 목소리에 차이는 있지만 많은 사람이 주장하는 것보다 작다며 이번 사례가 소녀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쪽으로 해결되길 희망했다.

미국인 트롬본 연주자로 여성 최초로 1980년 뮌헨 필하모닉과 연주한 애비 코넌트는 다수의 연구 결과, 같은 레퍼토리를 부를 때는 전문 음악인조차 소년과 소녀 합창단 사이 차이를 확실하게 들을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코넌트는 영국과 같은 다른 나라에서도 소년합창단들은 이미 법적인 싸움 없이 남녀 모두에게 문을 열었다고 덧붙였다.

코넌트는 성명에서 "소년합창단은 음악적 전통이 아니라 여성은 교회에서 침묵을 유지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옛 종교적 전통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말했다.

베를린 법원은 16일 이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심리에 들어간다.

cool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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