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총이 유탄발사기?…"中, 홍콩 시위 겨냥해 가짜뉴스 공세"
NYT "중국, 홍콩 시위대 흠집내려 관영매체·SNS로 허위정보 퍼트려"
(서울=연합뉴스) 임성호 기자 = "홍콩 시위 참가자가 시위 도중 미국 육군이 쓰는 M320 유탄발사기를 발사했다."
중국 관영매체 차이나데일리는 최근 홍콩 침사추이에서 열린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의 한 참가자가 무기로 보이는 물체를 들고 있는 영상을 소셜미디어(SNS) 등에 올리며 이와 같은 설명을 달았다.
홍콩 시위대가 마침내 무장 시위에 나섰다는 증거인 것처럼 영상을 유포한 것이다.
중국 본토인들의 분노를 자아낸 문제의 영상에는 "테러리스트랑 다를 게 뭐냐", "우리가 얼마나 이런 걸 참아 줘야 하나"는 등의 댓글이 달렸다.
그러나 시위자의 손에 들린 물체는 무기가 아니라 홍콩에서 인기 있는 '에어소프트'라는 페인트볼 비슷한 게임에 쓰이는 장난감 무기였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3일(현지시간) 전했다.
NYT는 이처럼 중국 관영매체들과 SNS를 통해 확산하는 거짓 정보가 격화하는 홍콩 시위를 둘러싼 정보전에서 중국 당국이 반대 세력을 때려잡는 '곤봉'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홍콩 사태가 격화하는 계기가 된 여성 시위자의 실명 위기 사건도 '가짜뉴스 공세'를 피해가지 못했다.
이 여성은 경찰의 빈백건(bean bag gun·알갱이가 든 주머니탄)에 맞아 오른쪽 눈 실명 위기에 처한 것이지만, 중국의 관영 방송들은 '경찰이 아닌 다른 시위자가 쏜 물체에 맞은 것'이라는 설명을 내놓고 있다.
강력한 인터넷 통제 시스템인 '만리 방화벽'(Great Firewall)으로 대중들이 접하는 정보를 통제해온 중국이 요즘 들어 관영매체와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민족주의적이고 반(反) 서구적인 국민감정을 더욱 북돋고 있다는 게 NYT의 분석이다.
특히 중국은 홍콩 시위를 테러의 서막이라고 낙인찍는 등 시위대를 헐뜯으려는 목적으로 이미지와 영상의 맥락을 조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홍콩 시위를 '중국의 관점'에서 중국 본토와 해외에 전하려는 목적에서 나왔다고 신문은 평가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등 중국 지도층의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는 이런 보도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오해를 넘어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미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서는 중국 정부가 홍콩 시위에 보다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 웨이보 이용자는 이날 "그들(시위대)에게 매타작을 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아예 때려죽여 버려야 된다. 그냥 탱크 몇 대 보내서 치워 버려라"라는 과격한 글을 올리기도 했다.
평소 '악플'을 빠르게 삭제하는 중국 당국이 이런 댓글이 넘쳐나도록 방치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자국 누리꾼들이 홍콩에 보내는 공격적인 경고를 용인하는 모양새여서다.
러시아 출신 영국 언론인 피터 포메란체프는 NYT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전통적인 '선전'(propaganda)과 다른 '허위 정보'(disinformation)라는 개념으로 중국의 움직임을 분석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민들을 설득해 정부의 편을 들게하는 선전과 달리 단순히 혼란을 싹트게 하고 음모론을 퍼뜨리려는 게 이와 같은 허위 정보 유포의 목적이라고 포메란체프는 설명했다.
중국이 홍콩 시위와 관련해 최근 적극적으로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것은 시위 격화에 발맞춘 전략으로 보인다고 신문은 분석했다.
중국 당국과 관영 매체는 홍콩 시위 초기인 지난 6월까지만 해도 대체로 이를 무시하다가 지난달 1일 사상 초유의 입법회 의사당 점거 시위를 계기로 시위대의 폭력성을 비판하는 기사와 사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후 지난달 21일 일부 시위대가 중국 중앙정부를 대표하는 기관 앞에서 국가 상징물인 붉은 휘장에 검은 페인트를 뿌리고 날계란을 던지자 관영 매체들의 비판 강도가 더욱 높아졌다.
이어 지난 3일 대규모 집회에서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바다에 빠뜨려 훼손하는 일이 벌어지자, 관영 매체들은 국가 존엄을 훼손했다며 강력한 대처가 필요하고 주장해 중국인들의 분노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8천7백만 팔로워를 거느린 중국중앙방송(CCTV)은 당시 웨이보에서 "오성홍기의 수호자는 14억명에 달한다"며 '나는 국기의 수호자다'라는 글을 공유하라고 촉구했다. 이 글은 홍콩 배우 성룡(成龍·재키 찬·청룽)을 비롯해 1천만 명 이상이 공유했다.
반면 정보전에서 압도당한 홍콩 시위대가 실제로 거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자신의 주장이 무엇인지 알리려는 노력은 좌절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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