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37년 만에 대학 캠퍼스에 공권력 진입 허용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그리스 의회가 37년 만에 공권력이 대학 캠퍼스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
9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의회는 범죄 신고가 있을 때 경찰이 캠퍼스 내에 들어가 조사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을 전날 가결했다.
의회 다수를 점유한 신민주당 등 우파 성향의 정당들이 찬성표를 던진 반면에 좌파 성향의 야당들은 반대해 대조를 이뤘다. 신민주당은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가 이끄는 당이다.
미초타키스 내각의 핵심 개혁 정책인 이 법안은 대학 내에서 범죄 등의 신고가 있을 경우 경찰이 언제든지 캠퍼스에 들어가 수색·조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전에는 경찰이 대학 캠퍼스에 들어가려면 대학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그 문턱을 사실상 없앤 것이다.
그리스에선 군사 독재 정부(1967∼1974)가 1973년 대학 캠퍼스 내에서 독재 타도를 외치며 항의 시위를 하던 학생들을 탱크까지 동원해 무력 진압,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한 뒤 1982년 법으로 공권력의 캠퍼스 진입을 제한했다.
하지만 이후 그리스의 재정 위기 때 대학 캠퍼스에 터를 잡고 화염병 시위를 일삼는 무정부주의 성향의 시위대를 상대로 공권력이 무기력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특히 마약 밀매·살인 등 중범죄자들이 경찰 검거를 피해 대학 캠퍼스로 숨어드는 일이 잦아지며 법 개정론이 일었다.
여당인 신민주당은 대학 캠퍼스 내에서 발생하는 폭력, 공공기물 파손, 마약 밀매 등의 범죄와 싸우기 위해선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전날 의회에 출석한 미초타키스 총리도 법안 표결에 앞서 "대학은 거리·광장과 마찬가지로 대중의 공간"이라며 "위험이 닥치면 누구든 경찰의 도움을 찾게 된다"고 법안 통과 필요성을 호소했다.
하지만 야당은 새 법이 대학 내 표현·연구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것이라며 법안 통과 저지를 공언해 갈등이 빚어졌다.
의회가 이 법안을 처리할 당시 수백명의 시민들이 아테네에서 법안에 반대하는 거리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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