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일본 수위 조절에 긴장 늦추면 안 된다
(서울=연합뉴스) 일본이 7일 백색국가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시행령 개정안을 공포하면서 기존 반도체 핵심소재 3개 품목 외에 개별허가 품목을 따로 지정하지는 않았다. 까다로운 수출허가를 받아야 하는 품목을 추가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배제하는 큰 틀은 그대로여서 일본이 확전을 유보한 것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미국의 중재 노력이나 국제사회의 여론을 살피며 수위를 조절한 것 같다. 앞으로 어떤 꼬투리를 잡아 개별허가 품목을 지정할 수도 있어 피해 최소화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일본은 개정 시행령에서 수출상대국 분류체계를 바꿨다. 단순히 백색국가와 비(非)백색국가로 대별하던 것을 그룹 A∼D로 세분했다. 과거의 백색국가로 거의 개별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그룹 A, 일일이 개별허가를 받아야 하는 그룹 D 국가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에 수출할 때 일정 품목은 3년간 유효한 포괄허가를 받고 나머지 품목은 개별허가를 받아야 한다. 한국은 일정 품목 포괄허가, 나머지 품목은 개별허가를 받아야 하는 그룹 B에 포함됐다. 일본이 개별허가 품목을 따로 지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개별허가 대상으로 발표한 고순도 불화수소 등 반도체 3개 핵심소재 이외의 다른 분야에서는 현상을 유지하며 분위기를 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렇다고 일본이 반도체 핵심소재의 수출규제에서 그칠 것으로 서둘러 판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시행규칙은 수출 관련 주무부서가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하위 법령이다. 적절한 수준에서 조절하면서 분위기를 보다가 외교 안보적 갈등이 자기들이 뜻하는 쪽으로 풀리지 않으면 칼을 다시 뺄 수 있다. 과거사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든, 턱밑으로 추격해오는 한국 경제의 핵심 경쟁력을 타격하려는 것이든 일본의 움직임에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일본의 경제보복이 더는 번지지 않도록 국제 여론을 환기하고 사태의 실질적 타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면서 추가 보복 가능성에 대해서도 철저히 준비하길 바란다.
일본이 개별허가 품목을 지정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일반 소기업과 거래하는 일부 중소기업들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우리가 백색국가였을 때는 어떤 기업이라도 한국에 수출할 때 3년 단위 일반포괄허가를 받을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자율준수프로그램(CP) 인증을 받은 기업만 특별 일반포괄허가를 받을 수 있다. 이런 프로그램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일본의 소기업으로부터 자재나 물품을 수입하는 국내 중소기업들은 자칫 90일까지 소요되는 개별허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당국이 특별히 신경 써야 할 분야다.
과거보다 나아졌다고는 하나 우리는 아직도 일본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기형적 분업구조를 갖고 있다. 핵심 부품이나 소재, 주요 생산시설의 장비를 너무 일본에 의존한다. 물론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다. 효율적인 국제분업구조를 활용하면 비용을 줄이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다만, 지나치게 일본 의존적인 기형적 분업구조가 국교 정상화 이후 이어진 두 나라 기업 사이의 나쁜 관행으로 축적된 것이라면, 관련 기업들은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