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살인건수 최고 찍은 멕시코…생업 전선 한인들도 불안

입력 2019-08-07 08:23
[르포] 살인건수 최고 찍은 멕시코…생업 전선 한인들도 불안

멕시코시티서 도소매업 종사하는 한인들, 늘어나는 범죄에 근심

주멕시코 대사관, 현지 경찰 대동 주기적으로 한인 상가 치안점검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요새 센트로 분위기가 흉흉합니다. 가게를 접을까도 고민했는데 쉽지 않네요."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구시가지인 센트로의 시장에서 6일(현지시간) 만난 교민 윤모 씨는 근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윤씨의 옷 가게로 최근 지역 폭력조직원이 찾아와 자신의 조직원을 직원으로 쓰라고 협박하더니 급기야 2주 전에 가게로 찾아와 돈을 빼앗아 갔다고 했다.

얼굴까지 수척해진 윤씨는 "치안이 점점 더 안 좋아지는 것 같다"며 불안해했다.

윤씨를 비롯해 1만2천 명가량의 한인들이 살고 있는 멕시코엔 요즘 들어 부쩍 어두운 뉴스가 늘었다.

전부터도 '멕시코'하면 마약조직과 관련한 강력범죄들이 먼저 연상됐지만 최근 들어 범죄율이 더 치솟았다.

지난 1∼6월 멕시코에선 총 1만4천603건의 살인이 발생했다. 하루 평균 80건 이상의 살인이 일어난 것으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멕시코 정부가 2006년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후 마약조직 수장을 검거해 조직을 와해시키자, 조직 내부의 다툼이 심화하고 조직에서 나온 이들이 다른 범죄를 일삼게 됐다.

과거엔 마약조직의 활동이 횡행한 일부 국경 지역 등에 강력범죄가 집중됐다면, 멕시코에서도 가장 안전한 곳으로 꼽힌 멕시코시티에서도 최근 각종 범죄가 늘었다.



오랫동안 멕시코에서 터를 잡고 생활해온 교민들은 악화한 치안을 몸소 느낀다.

센트로와 인근 테피토 지역엔 한인들의 의류, 잡화 등 도소매 매장이 300곳 몰려 있는데, 현금이 도는 곳이다 보니 예전부터도 강도와 절도 사건이 많았다.

한인 상인들은 최근 멕시코 경기 악화와 최근 몰려온 중국인 상인들의 저가 공세에 치안까지 불안해지면서 이중고, 삼중고를 겪고 있다.

역시 옷 가게를 운영하는 또 다른 교민 윤모 씨는 "지지난주와 지난주에 연속으로 퇴근길에 오토바이 날치기 강도를 당했다"며 "무서워서 못 다니겠다"고 말했다.

가방가게를 하는 홍모 씨는 "요즘 들어 더 불안해져서 어두워지기 전에 일찍 가게 문을 닫는다"고 했다.

멕시코 범죄 뉴스가 들려올 때마다 한국에 있는 친척이나 지인들은 "뭐 하러 그 험한 곳에서 계속 사느냐?"고 하지만, 길게는 수십 년 동안 터를 잡고 살며 정이 붙은 곳을 떠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곳에서 장사하는 한인 중 상당수는 아르헨티나나 파라과이에서 장사를 하다가 그곳 경기가 악화하자 멕시코로 온 이들이다. 멕시코 경제도 나빠지고 치안도 악화하면서 센트로와 테피토에도 10년 전보다 한인 점포가 100개가량 줄었다.

삶의 터전을 지키고픈 한인들은 자구책을 마련했다.

자체적으로 시민경찰대를 조직해 현지 경찰과 긴밀히 협조하면서 한인사회의 치안을 지키고 있다.

지역사회와의 동화에도 힘쓰고 있다.

잡화점을 운영하는 한모 씨는 "가능하면 주변 불우이웃도 열심히 도우면서 조심히 지내고 있다"고 했다.

한인들의 불안을 덜어주기 위해서 주멕시코 대사관은 현지 경찰을 대동하고 주기적으로 한인 상가들을 찾아 치안을 점검하고 있다.



6일 김상일 주멕시코 대사와 박성훈 경찰영사는 엘피디오 델라크루스 멕시코시티 중부 경찰서장과 관할 지구대장을 비롯한 현지 경찰들과 함께 센트로 한인 상가 20∼30곳을 돌아봤다.

김 대사는 "한인 분들이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보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대사관에서 관심을 갖고 있다는 모습을 현지 경찰에게 보여주면 경찰로서도 아무래도 더 신경을 쓰게 된다"고 말했다.

이날 옷 가게를 하는 한 한인이 김 대사에게 "오토바이에 두 명이 함께 탄 경우는 날치기일 가능성이 크니 집중적으로 단속해줬으면 한다"고 건의하자, 김 대사는 곧바로 델라크루스 서장에게 이를 전했다. 서장을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대사의 방문이 끝나갈 때쯤 센트로에서 차로 10분쯤 떨어진 신도심의 멕시코시티 조폐국에서의 무장강도 소식이 들려왔고, 경찰들은 분주해졌다.

크고작은 범죄 소식이 끊이지 않지만 한인들은 그 순간에도 열심히 손님을 맞으며 삶을 이어갔다.

20년 넘게 장사를 하면서 17번이나 강도 피해를 봤다는 이모 씨에게 멕시코를 떠나고 싶지는 않았냐고 조심스럽게 묻자 "그래도 멕시코가 참 좋은 곳입니다"라며 웃었다.

이씨는 "요즘 멕시코 손님들이 한일 갈등 뉴스를 보고 누가 잘못한 것이냐고들 많이 묻는다"며 어떻게 설명해줘야 가장 효과적인지를 궁금해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여러 어려움 속에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한인들이지만 자신들의 안전만큼이나 고국의 상황이 걱정이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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