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신호탄인가…트럼프발 글로벌 환율전쟁 우려 가중
中 환율조작국 전격 지정에 美 교역상대국들 좌불안석
美 환율관세까지 추진…"'환율냉전' 이미 진행중" 관측도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전격 지정함에 따라 글로벌 환율전쟁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 후 교역 상대국들의 통화에 대한 감시가 강화돼오던 상황에서 나온 가장 과격한 조치이기 때문이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부 장관은 5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중국 인민은행의 외환시장 개입을 이유로 들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그간 미국 재무부는 1년에 두 차례 발간하는 환율보고서를 통해 환율조작국(심층분석대상국) 심사를 해왔다.
재무부는 올해 5월 28일 발간된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을 환율조작국보다 외환시장 개입 수위가 낮은 관찰대상국에 올렸다.
그 때문에 이날 환율조작국 지정은 불과 2개월여 만에 정기적 분석결과를 뒤집는 극적인 반전으로 주목받고 있다.
재무부의 이 같은 공세는 주요 교역상대국들의 환율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민감한 태도가 임계점에 달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재무부 판정이 나오기 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중국이 환율조작을 자행한다고 비판했다.
이는 중국 위안화 가치가 전날 달러당 7위안을 돌파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데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었다.
사실 경제적으로 달러당 6.99위안과 7.01위안은 차이가 거의 없으나 미국은 7위안을 환율조작의 경계선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달러당 7위안을 중국 당국이 위안화 약세를 방치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마지노선으로 삼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간 트럼프 행정부는 교역 상대국들의 통화 약세를 무역적자의 주요 원인이자 정부 정책기조인 미국 우선주의에 대한 저항으로 여겨왔다.
미국과 교역하는 국가들이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수출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세 타격까지도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런 상황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전방위로 제도를 손질하고 있어 교역 상대국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미국은 일단 교역 상대국과의 양자 무역협정에서 외환시장 개입을 제한하는 조항을 삽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을 대체하는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에 환시개입 제한 조항을 넣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개정할 때도 이를 요구했으나 환율 조항이 협정문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다만 백악관은 한국이 미국 재무부와 외환시장 개입 제한과 관련한 별도의 합의를 이뤘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은 중국과의 고위급 무역협상에서도 환율조작 금지를 핵심의제 중 하나로 삼아 논의해왔다.
나아가 일본과의 양자 무역협상에서도 환율조항 삽입을 목표 가운데 하나로 설정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양자 무역협상을 앞둔 유럽연합(EU)에도 유로화 약세가 환율조작이라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무역협정으로 환율을 유리한 방향으로 틀어쥔다는 목표와 함께 다른 한편에서는 환율조작을 제재하기 위한 근거도 마련되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최근 환율조작 감시망을 대폭 확대하고 기준도 강화했다.
지난 5월 반기 환율보고서에서부터 환율을 감시할 대상국을 미국의 12대 교역국에서 대미 수출입 규모 400억 달러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환율조작을 감시받은 국가는 이번 보고서부터 갑자기 21개국으로 늘어났다.
재무부의 한 관리는 이 같은 조치에 따라 미국 상품무역 가운데 환율 영향을 측정할 수 있는 부분이 80%까지 증가했다고 밝혔다.
환율조작국의 판정 기준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의 비중이 종전 3% 이상에서 2% 이상으로 줄고, 통화가치 하락을 위해 지속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기간이 12개월 중 8개월 이상일 때에서 6개월 이상으로 짧아지는 등 강화됐다.
재무부가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국가는 심층적인 추가조사를 거쳐 제재를 받을 수 있다.
미국 상무부는 재무부와 공조해 환율조작국으로 판정되는 국가의 수출품에 고율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통화가치 하락으로 인한 수출경쟁력 강화를 수출 보조금으로 보고, 이를 무력화하고 징벌하기 위한 상계관세를 부과한다는 게 골자다.
이 같은 환율 상계관세는 불만을 품은 미국 업체의 제소, 재무부의 조사, 상무부의 판정 후 집행이라는 형식을 갖춘 정부 규정으로 추진되고 있다.
환율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집착과 통제 의지가 강화되면서 주요 교역 상대국들은 일제히 불안을 느끼고 있다.
특히 재무부로부터 환율조작 의심선에 오른 국가들에는 중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소식이 더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재무부는 지난 5월 환율보고서에서 환율조작국은 지정하지 않았으나 중국을 비롯해 독일, 일본, 한국, 이탈리아, 아일랜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등 9개국을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한 바 있다.
최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은 교역국가들의 기준금리 인하, 양적완화(중앙은행의 채권 등 금융자산 매입)에도 환율조작 의심이라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는 지난달 트위터를 통해 "중국과 유럽이 미국과 경쟁하려고 대규모 환율조작 게임을 한다"며 "자국 통화 시스템에 돈을 들이붓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도 응수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공손하게 앉아서 그들의 게임을 계속 지켜보는 멍청이가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완화적 통화정책 때문에 통화가치가 떨어지는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인 만큼 일각에서는 환율전쟁이 이미 '냉전' 형식으로 시작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글로벌 채권운용사 핌코의 경제고문인 조아킴 펠스는 최근 CNBC방송 인터뷰에서 각국 중앙은행들이 외환시장 직접 개입이 아닌 기준금리 인하, 마이너스 금리 설정, 양적완화 등으로 경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펠스는 "(글로벌 경기둔화 때문에) 모두 자국 통화의 가치가 떨어져야 하는 상황이지만 아무도, 어떤 중앙은행도 자국 통화의 강세를 원하지 않는 까닭에 환율냉전이 빚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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