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경제전쟁] 韓 증시 '쓰나미 악재' 이겨낼까

입력 2019-08-02 16:43
[한일 경제전쟁] 韓 증시 '쓰나미 악재' 이겨낼까

"투자심리 위축은 불가피…하락세 장기화는 아닐 듯"



(서울=연합뉴스) 증권팀 = 미중 무역갈등에 이어 일본의 수출규제 추가 도발까지 국내 증시에 악재가 줄을 이으면서 증권가에서는 비명이 나오는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3천억 달러 규모의 중국 제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일본 정부는 2일 '화이트리스트'(전략 물자 수출심사 우대 대상)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내용으로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그렇지 않아도 미중 무역협상 장기화와 이에 따른 기업 실적 부진 등 악재로 하락 일로를 걷던 국내증시가 미중 무역분쟁의 확전과 일본의 2차 보복 강행으로 더 어려운 처지에 몰린 셈이다.

특히 상장기업들의 실적이 한층 더 악화할 수 있어 당분간 증시 반등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증권가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다만 국내증시가 그동안 여러 악재를 반영해 이미 많이 내린 상태여서 하락세가 더 가팔라질 가능성은 작다는 시각이 많다.

◇ 증권가 "日 경제 보복, 기업 실적에 악영향 줄 것"

증시 전문가들은 한국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됨에 따라 대일 의존도가 높은 전략물자 품목과 관련된 업종·기업들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안소은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그간 G2(미중) 무역갈등으로 수요 위축 등 리스크가 부각됐지만 일본의 규제로 공급 측면에서도 비상사태에 직면하게 됐다"며 "일본과의 무역구조를 보면 일본산 수입품 중 중간재 비중이 높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안 연구원은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됨에 따라 새롭게 일본 정부의 심의를 받는 중간재 품목도 늘어날 것이므로 부품 조달 문제를 겪는 국내 산업의 생산과 투자를 위축시키고 궁극적으로 수출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백영찬 KB증권 연구원은 "국내 배터리 제조기업(LG화학[051910], 삼성SDI[006400], SK이노베이션[096770])의 원료 조달에 일시적인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전지 소재를 감싸주는 파우치 필름의 경우 대부분을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번 화이트리스트 배제는 그 영향이 불분명하다는 게 문제"라며 "산업 분야별로 영향이 어떨지 분석이 어렵고 이를 확인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고 센터장은 "정부가 어떤 획기적인 대책을 내놓는 것도 아니고 당장에 뭔가 실마리가 될 만한 게 보이지 않아 더욱 전망이 어둡다"고 덧붙였다.



이진우 메리츠종금증권[008560] 연구원도 "일본과의 분쟁이 불편한 진짜 이유는 국내 기업들이 '얼마나 피해를 보고 언제, 어디까지 영향을 받을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며 "서플라이(공급) 체인의 복잡성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반도체 소재로 국한됐던 이슈가 비반도체 분야, 예컨대 기계(산업기계)류 등으로 확산된다는 의미는 실제 피해 규모의 크고 작음을 떠나 시장에 또 다른 불확실성을 던져준다"며 "국내 대표기업 입장에서 보면 2차, 3차 협력업체가 어떤 부품을 사용하고 있고 관련 분야에 얼마나 노출돼 있는지 파악하기 쉽지 않은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기계류의 경우 일본산 부품을 사용하는 기업은 당장의 생산 차질 문제가 아닌 향후 유지·보수와 관련된 사안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반도체와는 타임라인이 다르다"며 "좀 더 시차를 두고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업들 입장에서는 대외적인 불확실성에 노출되면서 불리한 환경에 놓이게 되고 이에 따른 불안 심리로 투자를 늦추게 될 것"이라며 "삼성전자[005930]가 이번에 실적을 발표하면서 향후 투자 관련한 방침을 내놓지 않은 것도 그런 맥락이고 이는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 "시장 위축 불가피…2,000선 아래 추가 하락은 제한적"

전문가들은 일본의 경제 보복 공세와 미중 무역갈등 고조가 국내증시 전반의 투자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진단했다.

다만 국내증시가 이미 이런 악재를 상당 부분 선반영한 상태여서 코스피 2,000선이 무너진 상태가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

한대훈 SK증권[001510] 연구원은 "우려가 현실화됐다"며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 배제 조치는 어느 정도 예견돼 있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천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해 10% 관세를 부과한다는 소식과 맞물려 가뜩이나 국내증시를 둘러싼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투자심리 위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노동길 NH투자증권[005940] 연구원은 "중요하게 보는 가치평가(밸류에이션) 지표는 후행 기준 주가순자산비율(PBR)의 0.85배로, 금융위기 당시의 최저점이 그 수준이었다"며 "지금 지수에 대비하면 1970선 정도 되는데, 지금 워낙 미중 무역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고 국내증시의 이익 감소 폭도 빠르기 때문에 1970선이 뚫릴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노 연구원은 "1970선이 뚫릴 경우 지수 회복력은 빠를 것으로 본다"며 "국내증시는 전 세계 증시와 비교할 때 최근 3개월 수익률이 가장 낮은 편이고 조정을 먼저 받았기 때문에 미중 무역협상 불확실성에 따른 하락 폭은 다른 나라에 비해 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도 "전 세계 증시가 미중 무역분쟁 재점화의 영향을 받는 가운데 국내증시는 이미 주가가 많이 내려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 영향이 덜한 것처럼 보인다"며 "현 코스피 수준에서 추가로 낙폭이 크게 확대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도 "지금 코스피에는 여러 리스크가 많이 반영된 상태"라며 "2000선 밑으로 내려간 상태가 장기화하기보다는 복원력이 빠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미중 무역협상은 지난 2∼3년 지나온 것처럼 앞으로도 장기전이 될 것"이라며 "그러나 일본은 경제 전체적으로 보면 한국만큼 좋지 않은 상황이어서 이번 수출규제가 일본 자신도 타격받는 자해극이 될 가능성이 크고 앞으로 계속 악화하기보다는 봉합 점을 찾지 않을까 싶다"고 전망했다.

서상영 키움증권[039490] 연구원도 "코스피가 2,000에서 조금 밀리겠지만 크게 하회할 가능성은 크지 않고 지금 정도 선에서 크게 변화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며 "이달 중순부터는 중국발 경기부양 정책이 본격화하면서 흐름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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