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러 위반 공방 INF 조약 결국 폐기…국제 핵안보 타격

입력 2019-08-02 19:51
美·러 위반 공방 INF 조약 결국 폐기…국제 핵안보 타격

美, 러 순항미사일 개발·배치 비난…러는 美 유럽 MD에 위반 혐의

美, 유럽·동북아에 미사일 배치하고 러가 맞대응하는 위기 우려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미국과 러시아(옛 소련)가 지난 1987년 체결한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이 2일 폐기되면서 미·러 양국의 핵경쟁 억제에 기반을 뒀던 국제 전략적 안정성이 크게 흔들리게 됐다.

INF는 조약 체결 당시까지 생산됐던 사거리 500~1천km의 단거리와 1천~5천500km의 중거리 지상 발사 탄도·순항미사일을 모두 폐기하고 향후 해당 범주 미사일의 생산과 시험, 실전 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조약이다.

상대적으로 방어 여력이 큰 해상·공중 발사 핵미사일과 달리 목표물 도달 시간이 몇분에 불과해 치명적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지상 발사 핵미사일을 금지함으로써 우발적 핵전쟁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조약이었다.



미국과 러시아는 INF 폐기에 앞서 서로 상대국이 조약을 위반하고 있다며 오랜 기간 비난전을 벌였다.

미국은 러시아가 그동안 INF 조약이 금지한 탄도·순항미사일을 개발해 왔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미국은 특히 러시아가 조약에 저촉되는 사거리 2천~5천km의 중거리 순항미사일 9M729(나토명 SSC-8)를 개발해 2017년부터 실전 배치했다며 이를 폐기하지 않으면 INF에서 탈퇴하겠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9M729 미사일이 재래식 탄두는 물론 핵탄두를 탑재하고 몇분 안에 유럽 도시들에 도달할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어 유럽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9M729의 사거리가 480km로 INF 적용 대상이 아니라면서 미국이 INF 탈퇴를 위한 구실을 만들기 위해 러시아에 '가짜 혐의'를 씌우고 있다고 반박했다.

러시아는 오히려 루마니아에 이미 전개됐고 폴란드에도 배치되고 있는 미국의 유럽 미사일방어(MD) 시스템에 속한 발사대 MK-41이 요격 미사일뿐 아니라 사거리 2천400km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면서 미국이 INF를 위반하고 있다고 역공했다.

러시아는 또 공격용으로 이용될 수 있는 미국의 대형 무인기와, MD 시스템 요격 시험에 이용되는 중·단거리 탄도미사일형의 '미끼용 표적 미사일'도 INF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상호 비난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INF를 살리기 위한 양국의 몇차례 협상은 결국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고 조약 폐기라는 최악의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동안 중·단거리 핵미사일의 생산과 배치를 차단해온 '빗장'이 풀림에 따라 미·러 양국이 전략적 필요성에 따라 미사일 개발과 실전 배치로 내달릴 위험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군사 전문가들은 당장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 북한 등을 겨냥한 새로운 중·단거리 미사일을 개발해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 배치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그렇게 되면 러시아가 곧바로 맞대응에 나서면서 심각한 핵 위기가 고조되고 최악의 미·러 관계는 더욱 악화할 수 있다.

미국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군비통제협회 대릴 킴볼 사무국장은 2일 타스 통신에 미 국방부가 이미 이달 말에 INF에서 금지했던 종류의 지상 발사 순항미사일 비행 시험을 실시하길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 국방부는 오는 11월에는 INF 조약으로 1991년 폐기됐던 '퍼싱-2'와 유사한 준중거리 지상발사 탄도미사일 시험을 계획하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또 재래식 탄두를 장착한 중거리 미사일을 유럽에 배치하길 원한다고 킴볼 국장은 소개했다.

물론 이같은 미 행정부의 계획이 자국 의회나 나토 동맹국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미사일 개발과 배치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같은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모스크바의 유력 군사전문가인 블라디미르 예브세예프는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INF 폐기로 미국이 지상 발사 순항미사일을 일본과 유럽국가에 배치할 수 있다"면서 "그렇게 되면 러시아도 전략미사일과 '이스칸데르' 미사일과 같은 전술미사일 배치로 맞대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 6월 러시아 제2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연례 '국제경제포럼'에서 "우리는 러시아의 안보를 앞으로 오랫동안 확실하게 보장해줄 만한 최신 (무기) 시스템들을 갖고 있다"면서 "우리는 (이 분야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뤘으며 극초음속 무기 시스템 개발에선 경쟁자들을 추월했다"고 엄포를 놓았다.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도 지난달 31일 INF에서 금지한 지상 발사 핵미사일이 유럽에 배치될 경우 맞대응할 것인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미국에 더 가까운 곳에 유사한 미사일을 배치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러시아는 또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사거리 500km 이상 지상 발사 미사일 개발 계획에 대응하기 위해 오는 2020년까지 해상 발사 순항미사일 '칼리브르'(최대 사거리 2천km)의 지상 발사 버전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비관적 전망과 함께 미·러가 중국을 포함하는 새로운 핵통제 조약을 체결하는 협상을 서두를 것이란 낙관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미국이 INF를 탈퇴한 더 큰 이유가 이 조약에 가입하지 않고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으면서 중·단거리 미사일을 개발해온 중국 때문이라는 분석에 근거한 전망이다.



cjyo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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