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백색국가 제외 'D-3'…전기차 등 한국 미래산업 '타깃'(종합)

입력 2019-07-30 10:35
수정 2019-07-30 10:37
日 백색국가 제외 'D-3'…전기차 등 한국 미래산업 '타깃'(종합)

韓정부 총력전에도 강행 전망…조선 보조금 논쟁 등 확전 예고

1천100여개 품목 개별허가 전환…'입맛대로' 수출규제 가능성



(서울=연합뉴스) 고은지 기자 = 일본이 우방국인 화이트 국가(백색 국가) 명단, 이른바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법령 개정이 이르면 사흘 뒤 이뤄진다.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되면 일본은 자의적으로 한국에 타격을 줄 수 있는 품목을 중심으로 대(對)한국 수출 절차를 대폭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30일 일본 현지 언론과 업계에 따르면 일본은 이르면 8월 2일 각의(국무회의)를 열고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처리할 전망이다.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각의 개최일을 고지한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선 다음 달 2일 열리는 각의에서 한국의 백색국가 제외를 결정할 가능성이 가장 유력하게 점쳐진다.

한국 정부는 1일 일본이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고시한 이후 세계무역기구(WTO)와 미국에 잇달아 고위급 인사를 파견하며 이를 저지하기 위한 총력전을 벌였지만, 일본의 입장에는 별다른 변화가 감지되지 않는 상황이다.

정부도 각의 날짜를 정확히 알 수는 없더라도 백색국가 배제는 예정된 수순이라고 보고 단기 및 중장기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9일 반도체·디스플레이와 조선업계를 대상으로 수출규제 관련 설명회를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다음 달 9일까지 항공, 기계·공작기계, 자동차·자동차부품, 전자정보·통신, 석유제품, 바이오, 정밀화학·뿌리, 섬유·탄소섬유, 세라믹·전지, 철강·비철금속, 드론업종 설명회를 차례로 진행한다.

7월 30일∼8월 9일 부산, 대구, 인천, 광주, 경남, 수원, 대전을 돌며 지역설명회도 개최한다.

산업부는 지난 27일 공식 페이스북에 카드뉴스 형태로 2010년 중·일 희토류 분쟁을 언급하며 일본의 모순을 지적하기도 했다.

산업부는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희토류 분쟁 시 일본 정부의 주장을 되돌려 주고 싶다'는 제목의 글에서 일본 경제산업성이 "희토류 수출제한 조치가 일본만 대상으로 한 것이라면 WTO를 위반하는 것이며 세계 각국과 공동으로 중국에 시정을 요구할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을 상기했다.

당시 중국에 대해 차별적 조치를 지적했던 일본이 이번에는 반대로 한국에만 수출규제를 하는 차별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본은 전략물자통제에 참여하지 않는 중국과 대만, 싱가포르 등에는 3년 특별포괄허가제를 유지하면서 4대 국제수출통제체제에 모두 가입된 한국은 백색 국가에서 빼려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략물자관리원과 한국무역협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백색국가 제외 시 규제 대상 품목과 특별일반포괄허가 혜택을 가지고 있어 비교적 수출규제에서 자유로운 일본의 자율준수프로그램 인정기업(CP) 632개를 고지했다.

관세청은 일본의 수출규제 품목을 수입하는 업체에 관세 납기연장과 분할납부 등 세제 지원을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제출한 서면 질의 답변서에서 "화이트리스트 제외가 현실화하면 수출제한대상이 확대될 우려가 있다"며 "추가 보복에 대해 발생 가능한 모든 경우를 염두에 두고 관계 부처가 긴밀히 공조해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은 29일 기자간담회에서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며 "통상 측면에서는 WTO 제소나 아웃리치(대외접촉)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한다면 무기로 전용될 우려가 있는 1천100여개 대한국 수출 물품은 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 대상으로 바뀐다. 이들 품목을 한국으로 수출하려면 일본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일본은 한국경제에 당장 타격을 줄 수 있는 품목부터 조일 것으로 예상된다.

백색국가에서 배제된다고 해서 한국으로의 수출길이 완전히 막히는 것은 아니다.

일본 정부 역시 이번 조치가 수출규제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민간용으로 사용되는 정상 수출의 경우 허가를 내주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반도체처럼 한국 산업 내 비중이 큰 업종을 중심으로 수출을 막거나 추가 서류를 요구하며 허가를 지연하는 '꼼수'를 부릴 수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일본은 기업이 천몇개 품목을 수출할 때마다 신청서를 내면 건건이 봐서 검토하겠다는 이야기"라며 "유리한 품목을 넣다 빼는 식으로 운영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이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주력하는 전기차나 일본 의존도가 높은 화학, 정밀기계 등이 다음 타깃이 될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한일 주요 산업의 경쟁력을 비교한 결과 방직용 섬유, 화학공업, 차량·항공기·선박 등의 대일 수입의존도는 90%가 넘는 것으로 분석했다.

전기차 배터리와 수소전기차 탱크에 들어가는 필수 소재부품 역시 상당수가 일본산이다.

이에 LG화학[051910], SK이노베이션[096770], 삼성SDI[006400] 등 배터리업체들은 백색국가 배제에 대응한 대비책을 고민 중이다.

LG화학 신학철 부회장은 지난 9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일본의 수출규제 품목이 확대될 경우를 가정해 시나리오 플래닝에 들어갔다"고 밝힌 바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업체들은 수출규제 대상이 지난 4일 이뤄진 3개 품목에서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고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시나리오별 대책을 마련하고 매일 현황을 점검하는 등 비상경영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이 다른 방식으로 한국을 압박할 수도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달 26일 펴낸 '2019년판 불공정 무역신고서, 경제산업성의 방침' 보고서에서 산업은행의 대우조선 자금지원을 문제 삼았다.

KDB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042660]에 공적자금을 투입한 것을 '불법 보조금'으로 간주하고 WTO에 제소하겠단 방침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다.

대일 의존도가 높은 제품의 한국 수출을 막는 동시에 반대로 한국의 주력 수출품에는 비관세장벽을 세울 수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 농식품과 수산물의 최대 수출 시장이다. 특히 지난해 파프리카 수출액 가운데 일본 비중은 99%에 달했다.

현지 언론은 최근 일본 정부가 반도체 소재에 이어 한국 농식품을 추가 규제 품목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외교부 및 경제 관계 부처들과 수시로 만나 의견을 교환하고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다"며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e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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