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에서 일제가 젊은 여성에게 저지른 만행의 기록
신간 '인도네시아의 위안부 이야기'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게만 해 주신다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이곳에서 나는 너무나 많은 고통을 받았는데 벗어나는 방법과 길을 아직 모르고 있어요."
인도네시아 작가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1925∼2006)가 1973년 부루섬에서 만난 여성은 고통을 호소하며 탈출을 도와 달라고 했다. 이 여성은 1944년 무렵 일본에서 공부하도록 해주겠다는 일본군 장교 말을 믿고 부모와 떨어졌다가 성적 노리개가 됐다고 털어놨다.
여성은 "인간 이하의 취급과 멸시를 받았다"며 "내가 만난 위안부들의 전체 숫자는 대략 200명이 넘었고, 그중 20여명은 스마랑 출신이었다"고 말했다. 위안부라는 굴레로 인해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생전에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자로 거론된 투르는 1959년 인민문화연맹(LEKRA) 의장으로 선출됐고, 1965년 인도네시아 공산당이 일으킨 쿠데타에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아 4년 뒤 태평양 보르네오섬과 뉴기니섬 사이 부루섬에 억류됐다.
그는 10년간 머문 부루섬에서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에 끌려온 여성들을 만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군부 압제 속의 처녀들'이라는 저서를 남겼다. 신간 '인도네시아의 위안부 이야기'는 이 책의 번역본이다.
저자는 "충격적이고 슬프고 두렵고 우울한 이야기"라고 책을 소개하면서 일본군이 학교 교육을 구실로 삼아 많은 인도네시아 처녀를 배에 태워 어딘가로 보냈다고 적었다.
그는 어린 여성들이 나라에 봉사하려는 순수한 마음과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꿈을 품었기에 길을 나섰지만, 결국은 위안부라는 비참하고 잔혹한 상황에 빠졌다고 강조했다.
위안부 피해자 여성에 얽힌 중요한 논쟁점 가운데 하나는 강제성이다. 일본 정부 혹은 일본군이 주도적이고 강제적으로 위안부 여성을 모집했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당시에 분명히 법이 존재했음에도 왜 여성들이 배를 탔느냐는 질문을 던진 뒤 "그에 대한 답은 단순명료하다. 일본이 곧 법이었기 때문이다"라고 답한다.
그러면서 "일본이 여성들에게 학업을 약속했다는 사실은 신문이나 관보에 게재된 적이 없지만, 일본인들은 임무를 잔인하고 용의주도하게 그리고 무자비하게 강압적으로 수행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일본은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처녀들을 차출해 강압적으로 일본 군대의 성노예로 삼았는데, 이는 감히 반항을 생각할 수 없는 연령대의 어린 여자들을 의도적으로 차출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역자인 김영수 박사는 후기에서 "이 책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공식 사과와 타당한 보상을 집요하게 거부하는 일본 정부에 대응하는 객관적 역사 기록으로 활용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동쪽나라. 304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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