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러 사과 받고 요동치는 동북아질서 잘 헤쳐나가야

입력 2019-07-25 17:36
[연합시론] 러 사과 받고 요동치는 동북아질서 잘 헤쳐나가야

(서울=연합뉴스) 어느 정도 예상한 대로였다. 한국의 독도 영공을 정찰기로 침범하고도 발뺌하고 있는 러시아가 25일 열린 관련 양국 실무 협의에서 묵묵부답했다. 국방부가 주한 러시아 무관부 인사들에게 군 레이더로 포착한 항적 자료 등 영공 침해 증거물들을 제시했지만, 가타부타 반응하지 않은 채 본국에 전달하겠다고만 했다는 것이다. 러시아 정부는 침범 사실을 전날 부인한 바 있다. 주한 러시아대사관의 차석 무관이 기기 오작동으로 계획되지 않은 지역에 진입했다고 밝힌 직후 나온 공식반응이었기 때문에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과 러시아의 합동 군사훈련 과정에서 러시아 A-50 정찰기가 독도 상공을 헤집고 다닌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다. 러시아는 하루빨리 시인하고 사과하는 것이 옳다. 정부가 이를 위해 증거물을 수집하여 전달한 것은 당연한 처사다. 상대국이 기본적인 사실관계마저 부인하고 있으니 응당 필요한 일이었다고 본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다. 그리고 그게 더 중요할 것 같다. 청와대는 전날 러시아 차석 무관의 말을 서둘러 전했다가 논란을 자초했다. 그런 우를 반복해선 곤란하다. 국민들의 안보 불안이 가시게끔 중심을 잘 잡고서 엄중하고 냉철하게 러시아 정부의 공식 사과와 재발 방지 다짐을 받아내야 한다. 정전협정 이후 역대 첫 타국 군용기의 영공 침범 사건인 것을 되새겨야 한다. 유야무야 넘겨선 안 된다. 더는 같은 도발이 되풀이되지 않게 분명한 신호를 줘야 한다. 많은 전문가가 한일 갈등에 맞물려서 한미일 삼각 안보 협력 체제가 느슨해진 틈에 약한 고리인 독도 상공이 타깃이 됐다고 본다. 중국 팽창을 억제하려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맞서는 중국과 러시아의 태클, 두 나라에 밀착하는 북한의 움직임도 한 배경으로 짚는다. 이런 시기 일본은 한국에 터무니없는 수출규제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수출통제 절차 간소화 대상인 백색국가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하려는 행태를 보인다. 일본은 자유무역과 국제분업 체제로 속히 복귀하여 안보 협력을 포함한 발전적 한일관계로 나아가는 현명한 단안을 내리길 바란다. 한일 양국을 동맹으로 둔 미국에 대해선 두 나라의 대화를 매개하리라는 기대가 있음에 주목한다.

여기서 간과해선 안 될 것이 북중러 대(對) 한미일이라는 대립 항을 설정하여 세력균형을 갖추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단선 논법에 대한 경계다. 과거 냉전 시대 유물 같은 진영 논리에 갇혀 자신을 결박했다간 명분도 실리도 다 잃게 된다. 지금 우리의 국가이익을 지키기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경제 관계와 북한 문제를 고려해선 중국과 협력해야 하고,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한반도 이해 당사국인 러시아와 척 지면 안 된다. 한미동맹 관계를 다져나가는 가운데 얽히고설킨 일본과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기반으로 하여 잘 지내는 것이 좋다. 과거사 갈등은 분리하여 다루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분단 국가로서 힘겨운 비핵화·평화 여정을 지속하며 열강 사이에서 국민의 안전과 평화 번영을 추구해야 하는 우리는 철두철미 국익을 기준 삼아 이들 나라와 두루 조화롭게 지내는 것이 요구된다. 엎친 데 덮친 것같이 동북아 질서가 요동치지만 외교역량을 결집하여 현명하게 대처한다면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국익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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