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고 쪼개고 섞고…인간 창의성의 비밀
신간 '창조하는 뇌'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세상에 없던…'이라며 혁신을 강조하는 것들이 있다. 반면에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도 있다.
인간의 창조물들은 새롭지만, 한편으로는 옛것과 닮았다. 이전에 나온 것과 비슷해 보이지만, 실은 변화한 것이기도 하다.
2007년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았다. 매스컴은 마법에 가까운 선구적인 제품이라고 환호했고, 블로거들은 '지저스 폰'(Jesus Phone)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아이폰에 앞서 1984년 카시오는 터치스크린 기능이 있는 손목시계 AT-550-7을 선보였다.
IBM은 1994년 세계 최초의 스마트폰 사이먼을 내놨다. 애플리케이션이 깔렸고 이메일을 주고받는 기능도 있었다. 그러나 배터리가 1시간밖에 가지 않았고. 전화 요금이 너무 비쌌다. 앱 생태계도 구축되지 않았다.
사이먼은 사라졌지만, 아이폰에 자신의 유전물질을 남겼다.
뇌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과 작곡가 앤서니 브란트는 신간 '창조하는 뇌'에서 "인간은 자신의 경험과 주변 원재료를 토대로 세상을 리모델링한다"고 강조한다.
인간은 늘 새로운 것을 찾고 진화한다. 다만 혁신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다이아몬드처럼 역사를 압축해 새롭고 놀라운 형체를 형성하면서 만들어진다고 이들은 설명했다.
과학뿐만 아니라 예술 등 모든 영역이 마찬가지다. 모든 것에는 그 나름대로 계보나 족보가 깃들어 있다.
700년에 한 번 나올만한 독창적인 그림이라고 평가받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에서도 계보나 족보를 찾을 수 있다.
피카소가 '자신의 유일한 스승'이라고 말한 폴 세잔은 기하학적 형태와 대담한 색채를 사용했다. 피카소는 엘 그레코에게도 영향을 받았다.
다른 화가들도 이들 그림을 보고 영감을 받아 걸작을 만들 수 있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반대로 피카소는 주변의 원재료를 캐내 독창적인 예술품을 창조했다.
저자들은 인간의 창조하는 뇌의 세 가지 전략으로 휘기(Bending), 쪼개기(Breaking), 섞기(Blending)를 꼽는다.
이 세 가지 정신 활동이 인간이 사이먼에서 아이폰을, 토착 미술품에서 현대 미술을 탄생시키는 혁신을 이뤘다. 이를 바탕으로 아폴로 13호가 지구로 무사히 귀환했고, 포드의 자동차 공장도 생겨났다.
휘기는 기존에 존재하던 것의 원형을 변형하거나 뒤틀어 본래의 모습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안무가 마사 그레이엄의 혁신적인 안무,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곡선 형태 건축물, 영화 '300'에서 슬로 모션과 패스트 모션을 번갈아 사용하며 시간을 뒤튼 것이 예다.
하나의 원형을 해체해 여러 조각으로 나누는 쪼개기는 새로운 창조의 재료를 만드는 전략이다.
피카소가 평면을 분해해 입체적인 형상을 탄생시켰고, 미세 결정 수백만개로 이뤄진 LCD TV 기술도 이에 해당한다.
섞기는 2가지 이상의 재료를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한다.
인간과 사자를 합친 스핑크스처럼 세계 문명 곳곳에서 섞기를 볼 수 있다. 유전공학과 힙합 음악 등도 섞기의 결과다.
이 세 가지 전략은 각자, 때로는 서로 협력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고 혁신을 완성한다.
창의성은 인류 역사의 특징이자,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이다.
저자에 따르면 다른 동물과 달리 자신의 기대를 깨뜨리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구가 창의성의 근원이 됐다.
사회성이 뛰어난 인간이 상호작용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것도 위대한 혁신을 일군 이유다.
또한 창의적인 결과물에는 숱한 실패에도 수많은 시도를 거듭하며 기존의 것을 깼다는 공통점이 있다.
책은 뇌의 작동 원리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류 혁신의 역사를 돌아본다.
뇌과학자와 예술가가 함께 쓴 책답게 과학적 이론보다는 풍부한 사례를 통한 통찰로 창의성의 비밀을 쉽고 흥미롭게 풀어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창의적인 뇌의 비밀' 원작이다.
쌤앤파커스. 엄성수 옮김. 368쪽. 1만9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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