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타계했다' 헛소문에 죽었다가 살아난 투르크멘 대통령
현지 일부 언론 통해 루머 일파만파…당국 "완벽한 거짓말"
(서울=연합뉴스) 김형우 기자 = 세계에서 가장 비밀스럽고 폐쇄적인 국가 중 하나로 알려진 중앙아시아 투르크메니스탄의 대통령이 신부전증으로 사망했다는 루머가 러시아 일부 언론에 보도됐다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23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과 러시아 타스 통신에 따르면 지난 21일 모스크바 지역 라디오 방송 등 다수 언론이 자체 소식통을 인용해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이 신부전증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중앙아시아 전문가 아슬란 루바예프는 러시아 현지 라디오방송 '고보리트 모스크바'(Speaks Moscow)에 출연해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에 사는 기업인들이 (대통령이 타계했다는) 사실을 나에게 알려줬다"고 말하며 소문이 확산했다.
여기에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추방당한 야당 관계자들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인 '자유 투르크메니스탄' 역시 구르반굴리 대통령이 '신부전증'으로 사망했다고 밝히자 루머는 거의 사실처럼 굳어져 러시아 NTV 등 주류 언론에 보도됐다.
하지만 루머의 당사자인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은 당시 휴가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루머는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졌다고 BBC 방송은 전했다.
실제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은 지난 5일 이후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는 심지어 자국을 방문한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를 만나지도 않는 등 그의 실종과 투르크메니스탄 정부의 침묵이 루머에 기름을 부었다고 BBC는 덧붙였다.
논란이 커지자 지난 21일 저녁이 돼서야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은 "완벽한 거짓말"(absolute hoax)이라고 해명했다.
루머를 전한 루바예프도 해당 정보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대중에게 잘못된 정보를 알린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다.
아이러니하게도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의 행적은 투르크메니스탄 야당 웹사이트를 통해 전해졌다.
중병에 걸려 독일 병원으로 이송된 어머니 문제 때문에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BBC는 대부분의 나라에선 벌어지지 않았을 이번 소동이 일어난 배경으로 투르크메니스탄의 폐쇄적인 언론 환경을 꼽았다.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정보는 엄격히 통제된다.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 대통령의 죽음과 같은 루머가 들불처럼 번질 수 있다는 얘기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전 세계 180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9 세계언론자유지수' 보고서에서 투르크메니스탄(180위)을 북한(179위)보다 언론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세계 최악의 국가로 평가했다.
투르크메니스탄 내에서는 모든 유명 소셜 미디어 네트워크가 차단돼 있으며 언론을 국가가 통제한다.
외신에서 근무하는 일부 기자들은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으며 심지어 목숨까지 건다고 BBC는 지적했다.
정부의 소셜미디어 차단을 간신히 피해간 한 주민은 "사람들이 루머에 대해 들었지만, 그 사실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치과의사 출신으로 1997년 보건부 장관을 역임하고 2001년에 부총리가 된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은 2007년 대선에서 89%의 득표로 당선된 뒤 최근까지 철권통치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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