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베를린] 日과 너무 다른 獨, 나치에 저항한 선조에게 뿌리찾기

입력 2019-07-28 09:01
[힙베를린] 日과 너무 다른 獨, 나치에 저항한 선조에게 뿌리찾기

반성의 일상화…메르켈 "기억을 보존하고 이어가야"

연방군 청사 옆 독일저항기념관…나치에 대한 반역군인이 연방군의 표상

[※편집자 주 = 열번째 이야기. 독일 수도 베를린은 유럽에서 가장 '힙(hip)'한 도시로 부상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과 냉전체제의 유산을 간직한 회색도시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젊은 예술가들로 인해 자유분방한 도시로 변모했습니다. 최근엔 유럽의 새로운 IT와 정치 중심지로도 주목받습니다. 이런 복합적인 특색 탓인지 베를린의 전시·공연은 사회·정치·경제적 문제의식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힙베를린'에서는 다양한 문화적 현상을 창(窓)으로 삼아 사회적 문제를 바라봅니다.]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우리는 기억을 보존하고 이어가야 합니다. 역사적 교훈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 20일 나치 독재에 저항하다 희생당한 이들을 추모하면서 한 말이다.

75년 전 이날 나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를 암살하려다 실패한 뒤 총살당한 군인들을 위한 추모행사장이었다.

행사가 열린 베를린의 '벤들러블록'은 암살 모의가 실패한 뒤 색출된 주동자 장교들이 나치의 총구 앞에 섰던 현장이다.

메르켈 총리는 커다란 화환을 총살이 이뤄졌던 벽에 걸었다.

독일의 총리나 주요 장관들은 해외에서 열리는 2차 세계대전 관련 주요 행사에 꼬박꼬박 참석해왔다.

나치가 저지른 만행에 대해 가해자의 후손으로서 주변국을 상대로 참회를 반복하면서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기 위한 것이다.



오는 9월 1일 폴란드에서 열리는 2차 세계대전 발발 기념행사에도 메르켈 총리가 참석할 예정이다.

메르켈 총리는 2차 세계대전 전승국 정상이 베를린을 방문하면 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상징적인 장소인 노이에 바헤를 함께 찾아 헌화한다.

올해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노이에 바헤에서 고개를 숙였다.

독일 정부는 매년 7월 20일이면 벤들러블록에서도 추모 행사를 연다.

다른 행사와 달리 나치 독재 시절 피해자이기도 했던 독일인들에게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벤들러블록에는 독일저항기념관이 자리해 있다.

히틀러 암살모의 사건의 주도자였던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을 비롯한 나치에 저항한 이들의 기록이 상설 전시돼 있었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의 이야기는 2008년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영화 '작전명 발키리'로 전 세계적으로도 알려져있다.

기념관은 나치가 집권하기 이전부터 나치의 위험성을 경고했던 이들, 나치 집권 후 언론 등을 통해 반대 활동을 했던 이들, 유대인들을 숨겨줬던 이들의 사진과 이야기를 후대인에게 전해주고 있다.

정치인과 군인, 일반 시민까지 망라해 있다.



이념적으로도 사회주의자, 사민주의자 등 다양한 이들이 국가사회주의를 내세운 나치에 맞섰다.

기념관에 적혀있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의 마지막은 대부분 비극이다. 나치에 체포된 뒤 재판에 넘겨져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기념관의 벽면에는 나치의 유대인 박해에 저항했던 독일인들의 이름이 빼곡히 기록돼 있다.

독일은 이런 저항의 기록, 기억을 통해 현시대 독일의 뿌리를 저항한 이들에서부터 찾고 있다.

현재 독일이 당면하고 있는 극단주의의 부상 문제 역시 저항의 역사를 되새김질해 극복하려는 시도가 보인다.

메르켈 총리는 행사에서 "희생자들은 우리가 극우 극단주의, 반(反)유대주의, 인종주의와 결연히 싸워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은 남들이 침묵할 때 행동했고, 남들이 외면할 때 책임지고 나섰다"면서 "불복종이 의무가 될 수 있는 순간이 있다"고 강조했다.



벤들러블록이 독일 연방군 별관 청사와 붙어있는 점도 시사점을 준다. 나치 시대 반역군인들이 현재 연방군의 표상이 된 셈이다.

독일은 주변국을 상대로 역사적 사죄를 반복하는 점에서 그렇지 않은 일본과 대조적인 사례로 계속 주목을 받아왔다.

독일은 정치·사회적으로도 군국주의의 향수가 점점 짙어지는 일본과는 방향성이 사뭇 다르다.

물론, 2015년 난민의 대량 유입 이후 난민에 대한 반감과 국수주의를 자극하는 극우세력의 부상은 사회적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극우 성향의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나치 집권기의 과오를 축소하려는 발언을 버젓이 하기도 한다.

AfD는 2017년 총선에서 12.6%의 득표율로 연방하원서 제3 원내교섭단체로 급부상해 정치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실체'가 됐다. 지난해 가을에는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18% 전후로 뛰어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지지율이 13%로 내려가며 기세가 꺾였다.

기성정당에 대한 불만은 녹색당이 흡수하고 있다. 사회적 의제도 난민 문제에서 환경문제로 점점 더 옮겨가고 있다.



독일은 나치 시대에 대한 반성, 반(反)유대주의에 대해서만 민감하다는 지적도 받는다.

제국주의 시대 아프리카 식민지배 시절의 과오에 대해서는 외면한다는 것이다. 아직 19세기 나미비아에서 저지른 원주민 학살과 관련한 배상 문제도 마무리되지 않았다.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 문제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인식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아왔다.

나치 시대에 대한 반성 과정에서 반인종주의 문제를 반유대주의의 문제로 협소하게 인식하는 경향이 굳어진 탓이다.

독일 사회의 한계를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도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통일 후 독일의 최대 건축 프로젝트로, 베를린의 옛 프로이센 왕궁터에 설립 중인 '훔볼트 포럼'은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담긴 문화 공간으로 꾸며진다.





지난해 베를린의 최대 예술축제인 베를린 비엔날레의 주요 주제 의식은 아프리카에 대한 식민지배와 인종차별이었다.

아직은 부족한 독일의 과거사 반성과 현재의 인종차별 문제에 대응하도록 문화적 감수성이 사회를 등 떠밀고 있는 셈이다.

독일 연방하원에는 매년 1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연설한다.

올해도 어김없었다. 생존자들의 육성을 통해 자칫 느슨해질 수 있는 역사적 과오의 기억을 다져나가기 위한 것이다.

당시 볼프강 쇼이블레 하원의장은 생존자 앞에서 "어떤 민족도 역사를 입맛에 맞게 취사선택할 수 없다. 역사는 현재를 떠받치는 전제이고, 역사를 안고 살아가는 것은 모든 나라에서 미래의 기초가 된다"면서 "독일이 저지른 잘못으로 (역사의 과오를) 잊지 말아야 하는 우리의 책임은 더 커진다"고 말했다

lkbin@yna.co.kr #힙베를린 #hipbe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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