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도 통할까…한국형 오컬트 히어로물 '사자'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한국형 오컬트 히어로물이 하나의 장르로 안착할 수 있을까.
악령을 쫓는 엑소시즘은 더는 낯선 소재는 아니다. 영화 '검은 사제들' '곡성' '사바하' 뿐만 아니라 드라마 '손 더 게스트' 등을 통해 이미 관객, 시청자들과 여러 번 만났다.
오는 31일 개봉하는 '사자'는 구마사제와 격투기 챔피언 콤비를 내세워 히어로물 성격을 강화한 점이 특징이다. 마블 유니버스(MCU)나 '컨저링' 유니버스처럼, 거대한 세계관 속에서 한국형 히어로물을 꿈꿨던 김주환 감독의 의도가 드러난 대목이다.
한국 영화 외형을 넓혔다는 점에서 시도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소재 특성상 취향에 따라 선호도는 갈릴 법하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 신과 세상을 외면하며 살아온 격투기 세계 챔피언 용후(박서준)가 자신의 능력을 깨닫고 악에 맞서는 히어로로 거듭나는 과정이 큰 줄기다.
용후는 어느 날 꿈에서 본 의문의 상처가 실제 손에 난 것을 발견한다. 매일 밤 손에서 피를 흘리며 악몽에 시달리던 그는 바티칸에서 온 구마사제 안신부(안성기)를 만나고, 자신의 상처가 귀신을 쫓는 특별한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다. 구마의식을 함께 행하던 두 사람은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는 검은 주교(우도환)의 존재를 알게 되고 찾아 나선다.
여러 차례 등장하는 구마의식이 관전 포인트다. 묵주반지, 올리브 나무를 태운 숯, 성수병 등 여러 소품을 활용한 가톨릭 구마의식이 시선을 붙든다. 여러 인물의 몸에 깃든 악령을 쫓아내는 과정은 납량특집 못지않다. 악의 얼굴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한 일부 장면은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 정도다.
다만, 과유불급이다. 특별한 반전 없이 계속 비슷하게 반복되는 구마의식은 뒤로 갈수록 피로감을 키운다. 이미 '특별한' 능력을 지닌 주인공이기에 악을 물리치는 과정이 비교적 손쉽게 전개되는 점도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요소다. 약한 고리를 파고드는 악령이라지만, 귀신에 씌운 어린 소년의 모습을 오랫동안 보여주는 대목도 호불호가 갈릴 법하다.
이 영화는 미스터리 액션을 표방하지만, 정작 방점은 드라마에 찍혀있다. 용후의 트라우마와 내적 갈등이 자주, 더 크게 부각된다. 주인공들 대사 역시 신에 대한 믿음에 관한 것이 주를 이룬다. 전개가 축축 처지는 이유다. 안 신부의 유머 섞인 대사가 가끔 웃음을 자아내지만, 129분 러닝타임을 굴곡 있게 떠받치지는 못한다.
영화는 초반 용후의 화려한 격투기 장면을 보여주며 액션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실제 미국까지 날아가 1만1000석 규모 스튜디오에서 UFC 심판과 아나운서, 선수를 섭외해 촬영한 장면이다. 그 뒤 화끈한 액션은 후반부에 등장한다.
용후와 지신간 대결이 극의 절정이다. 마지막 싸움을 위해 변신하는 지신의 모습은 독특한 비주얼로 눈길을 끈다. 특수분장과 컴퓨터 그래픽으로 한국 영화에서 전례 없는 악당 모습을 구현했다.
바티칸 신부 역을 맡은 안성기는 노련하고 중후한 연기로 극 중심을 잡는다. 대세 배우로 떠오른 박서준과 우도환 역시 낯선 배역임에도 혼신의 연기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당초 시리즈로 구성됐다. 안 신부를 돕는 구마사제 역 최우식이 카메오로 출연했지만, 후속 작품에서는 그의 활약이 예고됐다. 데뷔작인 '청년경찰'(2017)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김주환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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