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백색국가 배제' 이달 말 분수령…국가역량 결집할 때
(서울=연합뉴스)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의 파장이 글로벌 정보통신(IT) 업계로 확산하면서 '공포지수'가 높아지고 있다. 일본이 실제로 수출 심사 때 우대하는 안보상 우호국가(백색국가)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면 반도체·디스플레이뿐만 아니라 전산업이 영향권에 드는 '도미노 충격'이 불가피해진다. 일본의 추가 보복 여부가 사실상 판가름 나는 이달 말까지 국가적 외교 역량을 총동원하되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한 전략도 마련해야 한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발효가 보름 이상 지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글로벌 고객사와 협력사의 우려 표명이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계 글로벌 최강자 대만 TSMC의 마크 류 회장은 한일 통상 갈등이 간단치 않은 상태라며 하반기 실적 전망의 최대 불확실성 요소로 일본의 수출규제를 꼽았다. 애플·아마존 등 미국 IT 강자들도 수시로 한국기업의 메모리 반도체 공급 차질 가능성을 물으며 노심초사하기는 마찬가지다. 사태 초기부터 예견된 일이기는 하지만 일본의 수출규제가 이미 한일 갈등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 붕괴 우려로 현실화하는 양상이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발동 이후 공급 차질 우려로 현물시장에서 D램 가격은 품목에 따라 최고 25% 올랐다.
터무니없는 이유로 한일 통상 갈등을 일으킨 쪽은 일본이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보복 차원에서 한국의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른 반도체 산업의 타격을 노린 수출 규제를 들고나온 것이 이번 갈등의 시초다. 과거사와 관련한 외교 문제를 '수출관리 운용의 재검토'라는 가당치 않은 이유를 내세워 수출규제로 끌고 가고 있다. 하나같이 외교·경제의 분리 대응 원칙도 깨고, 자유무역 원칙 기반의 세계무역기구(WT0) 규범도 무시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갈등을 누그러뜨리려고 노력하기는커녕 고노 다로 외무상 담화를 통해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고 '필요한 조치' 운운하며 한국에 책임을 덤터기씌우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일본의 추가 보복 여부는 이달 말이면 윤곽이 나온다. 백색국가 리스트 배제 법령 개정을 위한 의견수렴 절차는 24일 끝난다. 일본은 그 뒤에는 언제라도 각의를 열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배제할 수 있다. 백색국가 리스트 배제는 지금까지와 다른 전면전을 의미하고, 그 파장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러기 전에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 한다. 23∼24일 WTO 일반이사회에서 일본의 부당성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주요 이해당사자로서 일본의 의견수렴에 참여해 정부 입장을 강하게 밝혀야 한다. 미국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만큼 미국에도 끊임없이 우리의 입장을 피력해야 한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영향을 받는 품목의 할당 관세 적용, 반도체 연구개발(R&D) 분야 주 52시간 적용 예외 등 필요한 정책 지원도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 등 모든 경제주체가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알고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하는 것이 사태를 해결하는 지름길임을 깊이 인식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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