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시트' 이상근 감독 "극과 극의 장르가 만난 영화"

입력 2019-07-21 11:07
'엑시트' 이상근 감독 "극과 극의 장르가 만난 영화"

첫 장편 데뷔작…코미디로 풀어낸 재난영화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오는 31일 개봉하는 영화 '엑시트'는 뻔한 재난영화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오글거리는 신파도, 우왕좌왕하는 무능력한 정부도, 사람들을 구해내는 영웅도, 민폐 캐릭터도 없다. 대신 그 자리를 신선한 웃음이 채운다.

일견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재난영화와 코미디의 만남에 대해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이상근 감독은 "익숙함 속에서 뜻밖의 신선함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재난영화 장르에서 보통 기대되는 전개·캐릭터 방식이 있을 텐데 그보다는 코미디와 유머를 섞고 싶었어요. 어떻게 보면 극과 극의 장르라서, 그 둘이 어떻게 잘 붙을 수 있을지가 과제였죠. 여기에 한국적 정서가 바탕이 됐고요."

이 감독이 생각하는 한국적 정서는 영화 속에서 한국적 가족으로 보인다. 시끄럽고 간섭 심하지만, 정이 넘치고 서로를 아낀다.

이 감독은 "한국적 정서가 관객의 공감대를 형성한다면 재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용남(조정석 분)과 의주(임윤아)는 도심을 아래에서부터 뒤덮으며 올라오는 정체불명의 유독가스를 피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쓸데없다'는 핀잔을 듣던 산악동아리 경험이 생존의 수단이 된다. 유독가스로 인한 재난 상황이라는 소재는 이 감독이 2012년 처음 구상했다.

"당시 택시 안에서 라디오를 들었는데, 패널들이 나와 유독가스에 관해 설명하고 있었어요. 여러 유독가스가 각기 성질과 형태가 다르고 비중에 따라 위로 올라가기도 하고 아래에 깔리기도 한다고요. 유독가스가 계속 위로 올라가는 재난이라면 위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될지, 탈출을 위해 달려가는데 익숙한 공간이지만 유독가스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했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곳을 달려가는 용남과 의주는 이 시대의 '짠내나는' 청춘을 대변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가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실제로 처한 상황을 빗댄 것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죠. 저 역시 그런 감정을 느꼈던 순간이 있고요. 또 다른 누군가는 단순히 영화적인 상상력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고달픈 청춘이라는) 한 가지 은유로만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요."

이 감독은 그러면서 "산악동아리 설정은 용남과 의주가 찬란한 시절을 함께 보냈다는 장치이자 멋있는 액션의 모습을 위해 사용됐다"며 "평소에는 발휘될 수 없었던 재능이 극한의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카타르시스도 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극한의 상황에서 다른 사람부터 구하는 주인공들이 비현실적으로 보일 법도 하다.

이 감독은 "두 주인공의 이타적인 모습이 영웅적이고 숭고한 희생으로 비쳤으면 오글거릴까 봐 웃기는 장면으로 이를 좀 상쇄하려고 했다"며 "자기밖에 모르는 캐릭터가 사실 더 현실적이긴 하다"고 말했다.

두 주인공의 캐스팅에 관해서는 '신의 한 수'였다고 자신했다.

"용남이는, 정석 씨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이죠. 연기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라 제가 원하는 용남의 다채로운 연기 톤을 표현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윤아 씨는 조정석 씨와 신선한 조합인 데다가 예능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에서 보여준 털털함과 같은 새로운 모습을 발견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엑시트'는 이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데뷔하게 됐지만, 그는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대학교 1학년 2학기 때, 단편영화를 찍었는데 그걸 계기로 영화감독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나리오 쓰고 하다가 2015년 '엑시트'를 들고 제작사 외유내강을 찾아갔죠. 제가 과거 류승완 감독의 연출부를 했었어요. 그래서 외유내강이 제가 뭘 잘하는지 가장 잘 알았고, 이 계획을 구체화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는 다른 작품이 아닌 '엑시트'가 자신의 첫 장편영화가 된 데 대해서는 "이 영화 아닌 다른 작품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웃었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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