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불명 낙태약 불법유통 여전…여성계 "합법화 논의 시작해야"
낙태죄 헌법불합치에도 낙태약 유통은 불법…온라인 불법유통 적발 매년 급증
전문가 "부작용 피해 우려…철저한 관리 필요" 강조
(서울=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국내에서 처방과 유통이 금지된 '미프진' 등 경구 임신중절약(낙태약)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유통되면서 출처와 효능이 불분명한 '가짜 낙태약' 복용에 따른 피해 우려도 커지고 있다.
임신 초기 낙태까지 전면 금지했던 기존 형법 낙태죄 조항에 지난 4월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만큼, 차라리 낙태약 처방과 유통을 하루빨리 제도권 안으로 들여와 여성들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21일 각종 SNS 검색창에 '미프진' '낙태약' 같은 검색어를 입력하면 임신중절 약물을 판매한다는 광고 게시물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낙태약을 판매한다는 한 업자가 남긴 텔레그램 계정으로 상담을 요청하자, 5분도 채 되지 않아 나이와 마지막 생리 시작일 등을 묻는 메시지가 왔다.
이 업자는 "가격은 제품당 50만원이고 2일 이내 배송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정품이라 안전성이나 효능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내했다.
그러나 업자들의 말과 달리 출처가 불분명한 약이나 가짜 약을 유통하다 적발돼 처벌받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서울북부지법은 중국산 낙태약 1천여정을 들여와 미국산으로 속여 국내에 유통한 혐의(약사법 위반)로 기소된 중국인 업자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적발된 쉬 모(34)씨는 올 3월 중국산 불법 의약품 유통책에게 주문해 받은 중국산 낙태약 '미비사동편' 804정과 '미색전립순편' 207정을 낱개로 재포장한 뒤 미국산 정품 낙태약으로 속여 12명에게 판매하고 25명에게 발송을 시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외국산 낙태약을 정식 유통하는 업체로 가장하는 수법 등으로 낙태약을 불법유통하는 행위는 매년 적발 건수가 느는 추세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광수(민주평화당)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3년(2016년~2019년 5월)간 의약품 온라인 불법판매 적발 현황'에 따르면, 온라인상 불법 낙태약 판매 적발 건수는 2016년 193건에서 2017년 1천144건, 2018년 2천197건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올해에는 5월까지 이미 1천245건 적발됐다.
낙태죄 폐지를 요구해 온 여성단체들은 이미 낙태죄 조항이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이상 낙태약 복용에 따른 임신부들의 안전을 보장할 정부 차원의 조치가 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나영 공동대표는 "오히려 유통을 막으면 막을수록 여성들이 낙태약을 안전하지 않은 경로로 구입해 의사의 지도 없이 복용하는 상황"이라며 "하루빨리 정부가 관련 논의를 시작해 안전한 임신중절이 이뤄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는 "낙태 처벌조항의 개정 시한은 내년 말이지만, 그전에도 보건복지부가 관련 규칙 개정이나 유권해석 등을 통해 입법 전에도 낙태약 처방과 판매를 허용할 수 있다고 본다"며 빠른 조치를 촉구했다.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낙태약 처방과 유통이 합법화하더라도 부작용 피해가 우려되는 만큼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원영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총무이사는 "미프진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임신중절 시술의 불법성을 걱정하거나 병원에 가기 두려워 몰래 조용히 해결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약이 잘 듣지 않거나, 유산되더라도 하혈을 심하게 하는 등 부작용을 겪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원 이사는 "전문의 처방과 사후 모니터링이 뒤따라야 하는 약물인 만큼 향후 사회경제적 이유로 낙태가 허용되더라도 철저한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juju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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