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석유 밀매' 외국유조선 억류 '미스터리' 분분
이란, 억류 의혹에 "구조했다" 해명했다 '억류' 번복
억류된 리아호 최근 6개월간 기항 않고 환적 의혹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이란 혁명수비대가 18일(현지시간) 석유 연료를 밀수하려 한 혐의로 억류했다고 발표한 소형 유조선 리아호를 둘러싸고 여러 의혹이 분분하다.
일단 이란의 태도가 불분명하다.
16일 AP통신 등 서방 언론은 리아호가 14일 새벽 4시30분께 호르무즈 해협의 동쪽에서 선박자동식별장치(AIS) 신호를 마지막으로 송신한 뒤 갑자기 유턴해 이란 영해로 진입한 뒤 실종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이란군의 '보복성 나포' 가능성을 제기했다.
4일 영국령 지브롤터 당국이 대시리아 제재 위반을 이유로 이란 유조선을 억류한 데 대한 이란군의 대응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란 외무부는 같은 날 리아호가 기관 고장으로 표류하다 조난 신호를 송신했고 이를 수신한 이란 혁명수비대 해군이 구조해 수리를 하려고 이란 영해로 견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인근에 있는 아랍에미리트(UAE)는 리아호의 조난 신호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더는 공방이 이어지지 않아 '실종' 사건은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18일 이란 혁명수비대가 이 배를 석유 밀수 혐의로 법적 절차를 밟아 억류했다고 발표하면서 다시 관심사가 됐다.
혁명수비대가 발표한 억류 경위를 보면 구조하고 보니 밀수선이었다는 내용은 없고 밀수를 단속하기 위해 순찰하다 관련 정보를 입수하고 리아호를 급습한 것으로 나온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18일 "이 배는 유조선이 아니고 소형 밀수선일 뿐이다. 우리는 매일 밀수를 단속한다. 선원들은 석유를 몰래 내다 파는 밀수꾼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혁명수비대와 엇갈린 이란 외무부의 구조 주장에 대해선 해명하지 않았다.
리아호의 행적도 의문투성이다.
이 배는 선적이 파나마인 것만 밝혀졌을 뿐 선주의 국적은 불분명하다. 1988년 건조 이래 선주와 관리 회사가 최근까지 수차례 바뀌었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샤르자, 푸자이라 근해를 오간 항적 때문에 선주가 UAE 회사라는 보도가 16일 나오기도 했지만 UAE 당국은 이를 즉각 부인했고 영국도 자국의 배가 아니라고 확인했다.
유조선 추적 정보업체의 자료를 종합하면 이 배는 5일 두바이 근해를 출발해 호르무즈 해협을 돌아 푸자이라 근해로 향했고 14일 새벽 AIS 신호가 끊겼다.
마린트래픽은 리아호가 행선지 없이 항해했다고 분석했다.
탱커트래커스는 16일 리아호가 최근 1년간 이 항로를 오가며 다른 배에 해상 급유하는 영업을 했다고 밝혔다.
로이드리스트에 따르면 이 배는 최근 1년간 일정한 기항지가 없었으며 바다에서 다른 배와 55차례나 접선했다. 또 27일간의 항적 자료는 아예 파악할 수도 없었다.
이를 종합하면 은밀하게 해상 환적을 하는 배의 전형적인 행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AIS 신호를 끄고 항해하고, 해상 환적하는 이른바 '유령선' 수법은 미국의 감시를 피해 이란산 원유 등 제재 품목을 밀거래할 때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이란 정부가 제재를 피해 이같은 수법으로 암암리에 원유를 수출한다고 의심하지만, 이란군이 오히려 석유를 밀수했다며 리아호를 억류하면서 이런 기존 도식이 혼란에 빠졌다.
억류 사실을 발표한 시점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영국의 이란 유조선 억류를 묵과하지 않겠다고 경고한 이튿날이라는 점에서 이란군이 이 하명을 즉시 실행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 배에 실린 석유가 100만 리터 정도로 적기 때문에 설사 이란이 밀수에 연루됐더라도 이 시점에서는 억류했다고 주장하는 게 이득이 더 크다는 것이다.
최고지도자의 발언이 엄포가 아니라 혁명수비대를 통해 호르무즈 해협에서 언제라도 상선을 실제로 억류할 만큼 이곳을 통제한다는 경고 메시지를 미국 측에 보낼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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