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경제보복 보름] ②잘못 꿴 '1965년 체제'…수교 후 끊임없는 갈등
'현실 타협' 한일협정, 식민지배 불법성·배상 문제 정리 못 해
日 "강제동원·위안부 피해자 배상 청구권협정으로 모두 해결"
韓 "반인도적 불법행위는 별도…개인의 배상 청구권 인정해야"
(서울=연합뉴스) 김동현 기자 = 일본 경제보복의 배경으로 지목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통해 일본의 식민지배 책임과 피해자 배상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한국 정부는 당시 한일협정에는 일본의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이 포함되지 않았으며, 피해자 개인이 일본 정부·기업에 배상을 요구할 권리까지 제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한국 정부에 5억달러의 경제협력자금을 제공한 한일협정으로 피해자 배상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런 간극은 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양국 간 깊은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 청구권 자금 5억달러 받았지만, 과거청산·피해배상 못 건드려
박정희 정부는 1965년 일본 정부와 한일기본조약과 한일청구권협정을 비롯한 5개 조약을 체결해 해방 이후 외교관계가 단절된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했다. 경제발전에 일본의 도움이 절실했던 박정희 정부와 반공 진영 결속을 위해 한일관계 개선을 원했던 미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그러나 정부는 일본의 거센 반대에 기본조약에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명시하지 못했고, 과거에 양국 간 체결된 모든 조약과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애매모호한 문안에 만족해야 했다.
한국 정부는 이 문안을 1910년 강제병합조약 등 식민지배로 이어진 과거의 한일조약이 체결 당시부터 불법이고 무효라는 의미로 해석했지만, 일본 정부는 과거 조약이 원래 합법적이고 유효했으나 1948년 한국 정부 수립으로 무효가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이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다 보니 강제동원 노동자와 일본군 위안부 등 식민지배 피해자에 대한 배상 문제도 제대로 다뤄질 수 없었다.
한일청구권협정은 일본이 경제협력 증진을 위해 한국에 5억달러(무상 3억달러·유상 2억달러)를 제공하도록 하면서 양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이익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고 규정했다.
이는 일본이 "피해자 배상 문제는 청구권협정으로 모두 해결됐다"고 주장할 때 제시하는 근거다.
그러나 일본이 식민지배의 불법성은 부정하면서 식민지배 피해자에 대한 배상까지 청구권협정으로 해결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는 게 한국 정부 입장이다. 일본 정부도 청구권 협정 체결 이후 5억달러의 성격에 대해 배상이 아닌 '경제협력자금' 또는 '독립축하금'이라고 표현했다.
이처럼 1965년 한일협정은 일본으로부터 경제발전에 필요한 도움을 받아내는 성과가 있었지만, 과거사 청산과 개인 배상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이견을 남겨 '불완전한 조약'으로 평가받는다. 이 한일협정에 기초한 한일관계를 흔히 '1965년 체제'라 부른다.
◇ 불완전한 '1965년 체제', 강제동원 배상 문제로 재조명
1965년 체제의 불완전함은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 다시 부각됐다.
법원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40년간 비공개였던 한일협정 문서 공개를 결정하면서 그동안 가려진 협상 내막이 드러난 것이다.
정부는 문서 공개가 야기할 피해 보상 문제 등 후속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정부 관계자와 민간 지도급 인사들이 참여하는 '한일회담 문서공개 후속대책 관련 민관공동위원회'를 구성했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도 정부위원으로 참여했다.
민관 공동위는 "한일청구권협정은 기본적으로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또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 일본 정부·군(軍) 등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있다"고 해석했다.
협정 체결 당시 일본 정부가 식민지배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탓에 양국 간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 관계에 대한 청구권 문제만 해결했을 뿐 위안부, 사할린동포, 원폭피해자 등에 대한 배상까지 포함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한국 정부가 받은 무상 3억달러에 "강제동원 피해보상 문제 해결 성격의 자금 등이 포괄적으로 감안되어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일본에 추가 보상을 요구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공동위는 정부가 무상자금 상당액을 강제동원 피해자 구제에 사용할 도의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으며, 정부는 지원법을 제정해 2008년부터 강제동원 희생자 1인당 위로금 2천만원을 지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가 이때 해결됐다고 주장하지만, 당시 민관 공동위는 '반인도적 불법행위'는 예외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일본 기업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책임을 인정한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 판결도 민관 공동위 의견과 궤를 같이한다.
대법원은 1965년 청구권협정이 양국 간 합법적 관계에서 발생한 청구권을 제한하지만,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처럼 불법적 관계에서 발생한 청구권은 제한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식민지배의 성격에 대해서도 명확히 불법이라고 규정했다.
문재인 정부는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 위안부 합의 갈등도 '1965년 체제' 극복이 과제
일본은 위안부 피해자 문제도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을 요구해왔지만, 일본은 이를 거부하고 민간 차원의 위로금 지급만 제시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가 계속 논란되는 것에 부담을 느낀 일본은 2015년 박근혜 정부와 위안부 합의를 타결했다.
양국은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을 한국 정부가 설립하고, 재단에 일본 측에서 10억엔을 출연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일본 측이 이 조치를 착실히 이행한다는 전제로 이 합의가 사실상 위안부 문제의 '최종 해결'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피해자를 철저히 배제한 한일정부의 정치적 야합"이라고 반발했고,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문재인 정부는 이 합의가 피해자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안부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며, 위안부 피해자 지원 재단도 최근 해산했다.
이런 한국 정부의 '역사 바로잡기' 움직임에 일본 정부는 "한국이 국제법상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반발하고 있다.
위안부 합의를 둘러싼 갈등 역시 1965년 한일협정에서 이를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일 양국이 식민지배 책임과 피해자 배상 문제에서 원만한 접점을 찾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이런 갈등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 한일 양국이 이번 경제보복을 계기로 적극적인 대화에 나서 1965년 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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