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분 난상토론…'초당적 협력' 다짐 속 文대통령-黃 '설전'도(종합2보)
文대통령-황교안, 공동발표문 문구 놓고 기싸움…'지원대책·화이트리스트 배제' 이견
추경 합의불발에 황교안 "추경은 원내소관"…文대통령 "이러면 우리가 한게 없다"
예정보다 1시간 넘기며 치열한 줄다리기…靑 만찬 대비했으나 불발
文대통령·황교안, 회동후 1분 30초간 '독대'…黃 "단독회동 아니다" 선긋기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박경준 이동환 기자 = 지난해 3월에 이어 1년 4개월 만에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의 18일 회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국가적 위기 앞에 '초당적 협력'을 다짐하는 자리였다.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를 "부당한 경제보복"이라고 한목소리로 규정하고 여야가 합심해 대응해야 한다는 데 정치권 전체가 일치된 의견을 표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일 해법의 구체적 내용을 비롯해 추가경정예산(추경) 처리나 안보라인 교체 요구 등 첨예한 쟁점을 놓고는 시각차가 가감없이 드러났고, 서로에게 주도권을 내주지 않으려는 듯 긴장감도 회동 내내 느껴졌다.
이 때문에 오후 4시부터 2시간 동안 진행하기로 한 회동은 예정 시간을 1시간 넘긴 오후 7시에야 끝났다.
특히 문 대통령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회동 후 1분 30초간 예정에 없던 '독대'를 했다. 5당 여야 대표 회동과 별도로 일대일 회담을 하느냐를 두고 밀고 당기기를 했던 탓에 두 사람의 독대는 단연 이목을 끌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문 대통령과 황 대표가 회동 후 창가로 가서 1분 30초가량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눴다"면서 "다른 사람들은 멀리 있어서 대화 내용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황 대표는 국회 브리핑에서 "그냥 대통령과 잠깐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이해해달라"면서 "단독 회동을 하지는 않았다"는 말로 과도한 해석에 선을 그었다.
이날 회동 전에는 청와대 본관 충무전실에서 15분 남짓 차담회 형식으로 사전환담 자리가 마련됐다
청와대에서는 노영민 비서실장과 김상조 정책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이호승 경제수석, 김현종 안보실 2차장 등이 참석자들을 맞았다.
참석자들은 비교적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덕담을 주고받았다.
특히 박근혜 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내 청와대가 익숙할 법한 황 대표가 사전환담을 주도했다.
황 대표는 잠시 통화하는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를 보며 "전화 통화가 가능한가 보죠. 전에는 안 됐던 것 같은데"라고 하는가 하면 충무전실 바깥을 손으로 가리키며 "국무회의를 저 끝에서 했었는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황 대표가 최근에 취임한 정의당 심상정 대표에게 "세 번째 대표 축하드립니다"라고 인사하자 심 대표는 "두 번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문 대통령-여야 5당대표 청와대 회동…일본 경제보복 대책 논의 / 연합뉴스 (Yonhapnews)
사전환담에 이어 오후 4시가 되자 충무전실에 입장한 문 대통령은 5당 대표와 악수하며 인사한 뒤 인왕실로 이동했다.
인왕실에 마련된 테이블에는 메밀차와 우엉차, 과일과 함께 6개의 의자가 놓였다.
문 대통령의 오른쪽으로는 이 대표와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심 대표가 앉았고 왼쪽으로는 황 대표와 정 대표가 자리했다.
문 대통령이 "이렇게 함께 둘러앉으니 참 좋다"고 말하며 사전환담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본론'에 들어가자 문 대통령과 여야 대표는 각자의 요구사항을 꺼내며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문 대통령은 "가장 시급한 것은 일본의 조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면서도 "경제가 엄중한데 시급한 것은 추경을 최대한 빠르게, 원만하게 처리하는 것"이라며 야권에 서둘러 추경을 처리해줄 것을 촉구했다.
이어 마이크를 든 이 대표는 "오늘은 야당 대표들의 말을 많이 듣는 자리"라며 자신의 발언 순서를 황 대표에게 양보했다.
황 대표 역시 일본의 태도를 성토하며 말문을 뗐으나 "이에 대비하지 못한 외교안보라인을 엄중히 문책하고 곧바로 경질하는 것이 국민을 안심시키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손 대표는 소득주도성장 폐기를, 정 대표는 분권형 개헌에 대한 입장을, 심 대표는 노동정책에 대한 총체적 점검과 대책을 요구하는 등 5당 대표는 허심탄회하게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했다.
문 대통령은 자리에 마련된 메모지에 5당 대표의 발언을 적으며 시종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는 문 대통령과 황 대표 사이에 '설전'에 가까운 토론이 벌어졌다. 주로 공동발표문의 구체적 문구를 둘러싼 이견 때문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문 대통령은 일본 수출규제와 관련, "핵심 소재·부품·장비 산업 육성을 위한 법적·제도적 지원 대책을 강구하기로 하는 조항이 공동발표문에 꼭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으나, 황 대표는 "예산이 수반될 수 있다"고 반대했다.
황 대표와 참모진은 소재·부품·장비 산업에 대한 지원 대책이라는 표현이 추경 증액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우려했고, 문 대통령과 다른 4당 대표들은 '지원 대책 강구'를 '경쟁력 강화'로 수정해 반영하는 쪽으로 양보했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배제도 쟁점이 됐다.
회동에 배석한 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일본의 추가 경제보복이 한일관계와 동북아 안보협력을 위협한다'는 문구를 발표문에 넣는 데 난색을 보였다.
그러나 정 대표와 심 대표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파기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위해 이 문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득했고, 손 대표까지 가세하면서 황 대표가 한발 물러섰다.
여야 대표들은 국회에서 대일 규탄 결의문을 채택하는 방안에 공감했으나, 별다른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원내 지도부 협의 사안으로 남겨뒀다.
문 대통령과 황 대표의 기 싸움은 추경을 둘러싸고 가장 고조됐다.
문 대통령은 추경을 10여차례 언급하며 조속한 국회 통과를 강력히 요구했고 이 대표도 힘을 보탰으나, 황 대표는 "그것은 원내 소관"이라며 맞대응을 피했다.
문 대통령은 추경에 대한 합의 사항을 공동발표문에 끝내 반영하지 못한 데 대해 "이러면 우리가 한 게 없다"며 굉장히 아쉬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는 회동 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추경 처리에 합의하지 못한 데 대해 거듭 안타까워하며 "유감스럽다. 유감, 유감, 유감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유감'을 네 차례나 반복하기도 했다.
열띤 토론을 거친 문 대통령과 여야 대표들은 '집단지성'을 모아 공동발표문을 도출했다.
회동이 끝나갈 무렵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과 여야 대변인이 우선 회동장 밖에서 발표문 내용을 점검했고, 이후 문 대통령과 대표들이 보는 가운데 문구를 세부 조정하는 식이었다.
청와대는 이날 티타임 형식의 회동이 혹시라도 만찬으로 이어질 것에 대비해 식사를 준비했지만, 회동 종료 후 참석자들이 모두 해산하면서 만찬은 성사되지 않았다.
hanj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