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세계수영] 다이빙 '맏형' 김영남 "동료이자 경쟁자 하람이 덕에 성장했죠"
"리우올림픽 출전 좌절 후 크게 상심…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약속 때문에 마음 다잡아"
"완벽한 연기 후 받는 박수가 다이빙의 매력…이번 대회 계기로 관심·지원 늘었으면"
(광주=연합뉴스) 박재현 기자 = "솔직히 얄미울 때도 있었어요. 혼자 자기 무섭다고 방문 열던 동생이 언제 저렇게 잘해졌나 싶었죠."
굴곡이 심했던 8년의 대표팀 생활 동안 김영남(23)을 지탱해 준 것은 '동료'이자 '경쟁자'인 우하람(21·이상 국민체육공단)이었다.
2019 국제수영연맹(FINA)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한창인 18일, 선수촌 인근에서 다이빙 국가대표팀 '맏형' 김영남을 만났다.
3개 종목에 출전한 그는 15일 10m 플랫폼 싱크로나이즈드 결승을 끝으로 모든 경기를 마쳤다.
16일 출전 예정이던 팀 경기에는 부상으로 기권했다.
이번 대회는 김영남의 4번째 세계수영선수권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이던 2012년 대표팀에 들어온 그는 2013년 바르셀로나, 2015년 카잔, 2017년 부다페스트까지 빠짐없이 세계선수권 무대를 밟았다.
초등학교 5학년까지 태권도를 했던 김영남은 체육 선생님의 권유로 다이빙을 시작했다. "공부는 정말 재미가 없었고, 계속 운동을 하고 싶었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다이빙이 정말 힘든 운동이라고 전했다. 엄청난 운동량으로 아무리 밥을 먹어도 배에 있는 복근이 선명하게 유지된다고 했다.
짧은 시간에 전신의 폭발적인 힘을 쏟아내는 터라, 대회가 끝나면 체중이 2∼3㎏씩 줄어있을 때도 잦았다.
그런데도 김영남은 13년째 계속 플랫폼 위에 서고 있다.
그는 "멋지게 연기에 성공하고 입수한 후 쏟아지는 박수를 받아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쁘다"며 "이 기억을 잊지 못해 다이빙을 계속하게 된다"고 말했다.
어린 나이에 세계선수권대회를 경험한 김영남은 한국 남자 다이빙의 기대주였다.
우하람과 함께 출전한 2015년 세계선수권 10m 플랫폼 싱크로에서 결승에 올랐던 김영남은 이후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다이빙 월드컵 준비에 매진했다.
그러나 노력은 결과로 돌아오지 않았다.
월드컵에서 4개의 올림픽 종목(3m 스프링, 10m 플랫폼, 3m 싱크로, 10m 싱크로)에 모두 출전했지만, 리우행 티켓은 한장도 따내지 못했다.
김영남은 "당시 경기력이 좋아서 자신감이 충만한 상태였는데 모든 종목에서 떨어져 충격이 상당했다"며 "변명이지만, 경기장 적응에 실패한 게 원인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나는 입수할 때 눈을 뜨고 타이밍을 잡는 스타일인데, 다이빙장이 외부에 있어 햇빛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며 "야외 다이빙장에서 뛰어본 게 처음이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경기를 망쳤다"고 밝혔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김영남은 귀국 후 충격적인 사실을 또 하나 들었다.
월드컵에 나간 사이 할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김영남은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그는 "대회에 나가기 전 할아버지께 올림픽 티켓을 드리겠다고 약속했는데 지키지 못했다"며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올림픽에 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때보다 지금이 경기력도, 컨디션도 더 자신 있는 상태"라며 "내년 다이빙 월드컵에서는 꼭 2020 도쿄올림픽 출전 티켓을 따낼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영남은 우하람과 2013년 세계선수권부터 함께 싱크로 종목에 출전해왔다.
그에게 우하람은 누구보다 든든한 '동료'이자 절대 지고 싶지 않은 '경쟁자'였다.
김영남은 "처음에는 하람이도 나도 서로에게 경쟁의식이 강해서 함께 동작을 맞춰야 하는 싱크로에서도 마찰이 잦았다"며 "상대방에게 양보하거나 맞춰주지 않으려고 고집을 부린 적도 있었다"고 전했다.
함께한 8년은 그들에게 단단함을 선물했다. 어린 학생이던 두 선수는 어느덧 훌쩍 자라 2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김영남은 "중학생이던 시절 하람이가 혼자 자기 무섭다며 방문을 열고 들어오던 게 아직도 생생한데, 지금은 정말 어른스러워졌다"며 "이번 대회 3m 싱크로에서 내가 실수를 했을 때도 하람이가 위로를 많이 해줬다"고 말했다.
어릴 적부터 형제처럼 지내온 두 선수는 서로에게 지는 것이 특히 싫었다.
김영남은 동생인 우하람이 스프링보드에서 자신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 분했고, 우하람도 형인 김영남의 플랫폼 실력을 따라잡고자 한 번이라도 더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김영남은 "하람이도 저도, 서로를 라이벌로 여겼기에 계속 실력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며 "동료이자 경쟁자인 하람이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인터뷰 말미에 김영남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김영남은 "저희 코치님들이 너무나 고생하고 계신다는 것을 많은 분이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박유현 감독님, 권경민 코치님은 저희가 편하게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정말 많이 신경 써 주신다"며 "지원이나 환경이 열악한 상황에서도 한국 다이빙이 이만큼 성장한 것은 코치님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몸 관리를 담당하시는 윤연석 트레이너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운동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직접 다이빙을 배우시기도 했다"며 "그 모습을 보고 우리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덧붙였다.
누구보다 다이빙을 사랑한다고 자부하는 김영남은 이번 광주 세계수영선수권을 계기로 다이빙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늘기를 소망했다.
"김수지의 1m 스프링 동메달 덕분에 다이빙이 많은 주목을 받았다"며 "이번 대회를 계기로 지원이 조금이라도 늘어난다면, 세계와도 겨뤄볼 수 있는 훌륭한 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traum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