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세여도, 몸 불편해도, 교육 안 받아도…'놀라운' 작가들
8월 18일까지 서울대미술관 기획전 '7월의 눈'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류해윤(91) 씨는 일흔이 다 된 나이에 서울 성북구 길음동 부동산중개업소 한쪽 구석에 이젤을 세워놓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0여년 전 '70대 신인화가'로 세상의 주목을 한몸에 받은 류씨는 세간 관심이 한결 사그라진 지금도 맹렬히 작업 중이다. 20년간 그려낸 그림이 3천여 점에 이른다. "매일 8시간에서 12시간씩 그림을 그리신다고 합니다. 몸이 아프거나 정신이 힘들 때 그림이 마음을 맑게 해준다는 게 선생님 말씀입니다."
문한알 서울대미술관 학예연구사가 15일 전한 작가 근황이다. 류 씨는 지난 11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미술관 코어갤러리에서 개막한 '7월의 눈: 놀라운 작가들'에 다른 20여명과 함께 참여했다.
'7월의 눈'은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이들이 그린 훌륭한 작품들을 새삼 주목하고자 마련된 전시다.
이들 중에는 발달 장애나 시각 장애가 있는 이들도 있다. 91세 류씨부터 7살 어린이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참여했다. 투박한 느낌도 있지만, 독특한 표현 방식을 보여주는 작업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류씨 작품들에서는 전통 민화, 화조화, 이발소 그림, 신문 광고 등에서 따온 듯한 흔적이 보인다. 그와 함께 반복적인 그리기를 통해 독자적으로 닦은 조형 언어도 엿볼 수 있다.
발달장애가 있는 장형주 군은 '엄마' 다음에 꺼낸 단어가 '차' 일 정도로 차에 애착을 느낀다. 어린이들이 그린 차 그림은 많지만, 장형주 그림은 절제된 색과 과감한 면 처리를 통해 사물 존재감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북촌을 누빈 몸의 기억을 추상적인 지도 드로잉으로 담아낸 이희수·강다현·박현·황주한의 작업, 사물과 배경 구도가 독특한 남효인 정물화도 흥미롭다.
문 학예사는 "이번 전시를 통해 미술교육을 좀 더 반성적으로 바라볼 부분이 있을 것"이라면서 "작가는 통상 이러해야 한다는 제도권 경계를 다시 한번 묻고자 한다"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8월 1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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