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세계수영] 역사적인 여자 수구 첫 득점 공…연맹 무관심 속에 '행방불명'

입력 2019-07-16 17:01
수정 2019-07-17 11:59
[광주세계수영] 역사적인 여자 수구 첫 득점 공…연맹 무관심 속에 '행방불명'

공 챙길 기회 있었지만, 연맹 요청 없어…"한국 여자수구에 의미가 큰 공인데…"



(광주=연합뉴스) 박재현 기자 = "못 찾게 됐다니 아쉽죠. 한국 여자수구에 의미가 큰 공인데…."

걸음마를 뗀 한국 여자수구는 두 번째 경기만에 공식경기 첫 골을 뽑아냈다.

경다슬(18·강원체고)은 16일 국제수영연맹(FINA)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여자 수구 경기에서 러시아를 상대로 골을 기록했다.

'수구 경력 한 달 반'인 그는 2016년 리우 올림픽 동메달을 차지했던 수구 강국 러시아의 골문에 공을 꽂아 넣었다.

한국은 개최국 자격으로 이번 광주대회에서 세계수영선수권 여자수구 종목에 처음으로 출전했다.

이전까지 한국에는 여자수구 대표팀이 없었다. 대한수영연맹은 대회 개막을 약 두 달 앞둔 지난 5월 선발전을 통해 부랴부랴 선수들을 뽑았다. 훈련을 시작한 것은 6월부터였다.



대표팀의 이번 대회 목표는 '한 골'이었다. 짧은 연습 기간을 고려하면 원대한 목표였다. 조별리그 첫 경기였던 헝가리전에서 0-64 대패를 당할 때만 하더라도 골을 넣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긍정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던 선수들은 바로 다음 경기에서 역사를 썼다.

기대치 않았던 골 소식에 이른 시간 경기장을 찾았던 관중은 우렁찬 함성과 박수를 쏟았다. 선수들도 서로를 부둥켜안고 펄쩍펄쩍 뛰었다.

그 사이 러시아 선수들은 골문 안에 있던 공을 꺼내 플레이를 시작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사이 득점 공은 경기 과정에서 다른 공과 섞여버렸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경기 지연을 최소화하기 위해 총 10개의 공을 준비한다. 이 중 한 개는 경기에 쓰이고 나머지 9개는 예비로 둔다.

수구는 골이 들어가면 경기 시간을 멈춘다. 골대에서 공을 꺼내올 때까지 경기도 중단된다. 골이 된 공을 예비로 준비해둔 공과 바꿀 시간은 충분하다.

볼 관리를 담당하는 경기 운영위원회 관계자는 "경기를 중단하고 공을 가져오는 것은 힘들다"면서도 "잠깐 빼두고 예비 공을 사용하다가 경기 종료 후 가져오는 것은 가능하다"고 밝혔다.

설사 경기 도중 공을 바꾸지 못했다고 해도, 경기가 끝날 때까지 공을 지켜보다 종료 후 챙기면 될 일이다. 경다슬이 골을 넣은 시간은 경기 종료 4분여를 남겨둔 시점이었다. 수구 공이 탁구공처럼 작은 것도 아니다. 누군가 조금만 신경을 썼다면 못 찾았을 리 없다.

하지만 여자 수구팀을 선발하고, 관리하는 대한수영연맹은 여기에 무관심했다.

개최국인 데다 그 나라에서 기념할 만한 골이었다면 FINA도 공의 제공을 거부하지 않았겠지만, 연맹은 이를 요청하지 않았다.



종목 역사에 남을만한 의미 있는 경기 물품들은 그 종목을 담당하는 협회나 연맹이 보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첫 골의 퍽은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의 명예의 전당에 전시되기도 했다.

연맹에 공을 챙겨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안방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역사를 이뤄낸 사상 첫 여자수구 팀의 상징적인 공을 아무런 조치 없이 둔 것은 분명 아쉬운 대목이다.

한 수구 관계자는 "의미가 큰 공인데 어떤 공인지 알 수 없게 됐다니 안타깝다"며 "경기 후 다른 공을 가져다 두고 득점 공을 챙겨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고 전했다.

경기 후 많은 외신기자가 한국의 첫 골에 관심을 보이며 경다슬을 찾았다. 러시아의 한 방송국은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FINA 관계자 또한 한국 첫 골의 주인공을 확인하겠다며 공동취재구역을 찾았다. 수구인 모두의 이목이 쏠린 자리였지만, 연맹은 무관심했다.

traum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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