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패 하나 없는 광저우 임시정부 청사…"사드 여파 있었다"

입력 2019-07-14 12:00
명패 하나 없는 광저우 임시정부 청사…"사드 여파 있었다"

광저우시, 임정 청사로 쓴 '동산백원'을 '민국시대 역사건물'로 지정

청사 발견·고증에 일조한 강정애 씨 인터뷰…"표지판이라도 붙였으면"



(광저우=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외교부 공동취재단 = 현관 천장 아래 설치한 빨랫줄에는 수건과 속옷이 널려있고, 현관 앞에는 빗자루와 쓰레기통, 선풍기와 의자 등이 질서 없이 흐트러져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3층짜리 건물 안에서 누군가 주문한 음식을 배달하는 오토바이가 들락날락하는 것으로 미뤄봤을 때 누군가 살고 있는 게 분명했지만, 앞마당에서 관광객들이 떠들어도 창문을 열어 밖을 내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여느 가정집과 다름없어 보이는 이곳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일본군의 추격을 피해 중국 내륙을 전전하던 1938년 7월부터 9월까지 약 2달간 광저우(廣州)에서 청사로 사용한 '동산백원'(東山栢園)이다.

백범일지에도 등장하는 동산백원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사실은 2017년 2월 말 세상에 처음 알려졌지만, 그 어디에서도 이곳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였다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담장에 붙어있는 짤막한 안내문에는 "중국과 서양 건축양식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있는 근현대 건물"이라며, 광저우시 정부가 2018년 2월 해당 건물을 중화민국 시기에 지어진 역사적인 건물로 지정했다고 쓰여있었다.

주광저우총영사관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하며 동산백원 발견과 고증에 일조한 재중사학자 강정애(61) 씨는 12일 광저우의 한 호텔에서 외교부 출입기자단과 만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갈등이 여기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강씨는 중국 측에서 동산백원이 역사적인 건물임을 알리는 표지석을 세울 때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였다는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고 알려왔으나, 사드 배치를 두고 한중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모든 일이 원점으로 돌아갔다고 전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광저우시 정부가 해당 건물을 '민국건축물'로 지정했기 때문에 매매가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현재 동산백원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이 여러 명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강씨는 설명했다.



중국 정부가 앞으로 이 건물을 어떻게 활용할 계획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곳을 기념관으로 만들더라도 소유권과 운영권은 중국 측이 보유하는 방식이 될 전망이기에 한국 정부는 이곳에 기념비를 세우는 방안 등을 관계 당국과 협의하고 있다.

강씨는 "어느 날 갑자기 외국에서 동산백원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중국 정부로서도 난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이해하면서도 "하다못해 이곳이 임시정부 청사였다는 표지판이라도 하나 붙였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주광저우총영사관은 2013년부터 백범일지 등 여러 사료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로 쓰였다는 동산백원 터를 찾아 기념비를 세워보려고 백방으로 수소문을 시작했다.

그동안 역사학계에서는 동산백원이 폭격을 받아 사라졌다는 추정에 무게가 실렸으나, 영사관에서 2015년 9월 임시정부 광저우 청사의 옛 주소가 '휼고원로후가(恤孤院路后街) 35번지'라는 것을 발견하고 나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지금은 대만에 있는 중앙연구원역사언어연구소가 1928∼1929년 해당 주소에 머물렀다는 것을 파악했고, 이어 이 연구소가 창립 8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DVD에서 1920년대 동산백원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광저우시 문화국은 이러한 자료 등을 근거로 2016년 1월 광저우 임시정부 청사의 옛 주소인 '휼고원로후가 35번지'가 현재 '휼고원로 12호'로 바뀌었고, 이 주소에 해당 건물이 존재한다고 영사관에 확인해줬다.

독립기념관 등은 그해 2월부터 9월까지 검증작업을 했고, 외교부는 2017년 3·1절을 하루 앞두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광저우에서 사용한 청사 소재지를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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