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불호 갈린 오페라 '마하고니'…신선했다 VS 원작 훼손
국립오페라단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 한국 초연 리뷰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오페라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이하 마하고니)이 국내 초연된 지난 11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갈채가 쏟아지던 객석에서 갑자기 "부우∼" 하는 야유가 터져 나왔다. 총연출을 맡은 안성수 국립현대무용단 단장과 제작진이 무대 인사를 오른 순간이었다. 한두사람이 낸 소리였지만, 제작진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유는 이렇다. '마하고니'는 사회주의 이념을 사실주의 예술로 구현한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의 작품이다. 원작에선 환락의 도시 마하고니를 노골적으로 비판한다. 섹스에 목마른 남자들이 사창가에 우글대는 장면, 돈을 걸고 피 튀기는 주먹질을 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연기된다. 브레히트는 '마하고니'를 통해 사람들을 현혹하는 자본주의 소비사회를 꼬집은 것이다.
안성수 총연출의 선택은 달랐다. 그가 창조한 세계는 속세와 거리가 먼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강남 모델하우스를 연상시키는 새하얀 무대는 사창가를 떠올리기 어려웠고, 저속한 권투 장면도 우아한 춤사위로 포장했다. 일부 관객은 원작의 주제 의식을 구현하지 않고 엔터테인먼트에, 혹은 예술을 위한 예술에 그쳤다는 아쉬움에서 심술을 부렸을 것이다.
이런 평가가 억울한 면도 있다. '마하고니'는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공연을 두 달 앞뒀던 5월, 당초 예술감독이던 국립오페라단 윤호근 단장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급박하게 국립현대무용단 안성수 단장이 총연출로 위촉됐다. 1년 전부터 국립오페라단과 국립현대무용단이 이 작품의 컬래버레이션(협업)을 준비하긴 했지만, 안 단장으로선 오페라 전체를 오롯이 총연출하는 건 난생처음이었다. 언론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밝혔듯이 그는 원래 직설적 묘사를 꺼리는 연출가이기도 하다.
이번 공연에 빛나는 순간도 많았다. 현대무용이 추가되면서 극은 한순간도 속도감을 잃지 않았다. 1930년 독일 초연 이래 '마하고니'에 무용이 추가된 건 세계 오페라계를 통틀어 사실상 처음이다. 유럽과 미국에서 젊은 관객을 겨냥, 다소 지루한 고전 오페라에 발레를 집어넣는데 '마하고니'가 국내 최초로 이런 시도를 한 것이다.
정민선 무대미술·의상 감독이 구현한 시각효과도 빼어났다. 가수들의 화려한 바로크 의상은 미니멀한 무대와 시각적으로 충돌해 기괴함을 자아냈다. 사기꾼 '베그빅'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카드의 여왕 콘셉트로 등장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막에서 허리케인의 공습을 묘사한 영상,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스'를 연상시키는 영상도 참신했다.
음악도 빼놓을 수 없었다. '마하고니'는 국내 초연인 만큼 가수들에게도, 연주자들에게도 생소한 작품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휘자 다비드 레일랑은 피나는 연습으로 작품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드라마투르기를 맡은 이용숙 평론가는 "마하고니 음정은 반음이 많아 음정을 정확히 짚기도 어려운데, 지휘자가 탁월한 절대음감으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훈련해 애호가들이 환호할 만한 정확한 음악을 만들 수 있었다"며 "제가 감동할 만큼 연습을 '될 때까지' 열심히 시키는 지휘자였다"고 했다.
아울러 '지미 마호니' 역의 독일 테너 미하엘 쾨니히는 극의 내용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설득력 있는 가창을 선사했다. 베를린 국립오페라극장, 스페인 마드리드 왕립극장에서 주역으로 활동하는 그는 그 이상을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의 미성과 최고의 기량을 선보였다.
'베그빅' 역의 메조소프라노 백재은은 뛰어난 표정 연기로 극의 분위기를 주도했다. 특히 독일어 대사를 따발총처럼 쏟아내야 했는데, 한순간도 늘어짐이 없었다. 어려서 따로 독일어를 배우지 않은 그는 이번 배역에 캐스팅된 이후 피나는 노력으로 대사를 익혔다고 한다.
공연은 14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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