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액티브] "청소년 미혼모가 전부 아냐"…성인 미혼모 지원 절실
(서울=연합뉴스) 주보배 인턴기자 = "미혼모 하면 비행 청소년의 이미지만 떠올리는 건 편견이에요."
최형숙 '변화된 미래를 만드는 미혼모협회 인트리' 대표는 미혼모에 대한 한국 사회의 고정관념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2017년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10대 미혼모는 전체의 1.7%에 불과하다. 30대가 36%로 가장 많았고, 20대가 19%를 차지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어린 미혼모' 이미지로 인해 실제로 다수를 이루는 성인 미혼모의 삶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충분치 못하다는 것이 당사자와 지원 단체의 이야기다.
◇ 양육과 구직 병행하며 생계 이어가기…"너무 힘들어요"
성인 미혼모는 독립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일자리라고 입을 모았다. 안정적인 소득이 있어야 아이를 양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취재에 응한 성인 미혼모들은 구직 활동과 양육을 함께 한 시기에 경제적 어려움을 가장 크게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미혼모 김지연(가명·28)씨는 "출산 후 지원 시설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2년"이라며 "퇴소 후 전세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절실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1년 반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라며 "아이도 돌봐야 하니까 서류작업 등 부업으로 한 달에 10∼60만원쯤 벌면서 모아두었던 돈을 축내며 생활비를 대야 했다"고 했다.
대학에서 만화예술학을 전공한 김미선(41)씨 역시 "미혼모가 되는 길을 선택한 뒤 가족과 관계가 단절됐기 때문에 오로지 혼자 아이를 돌보면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며 "아이를 키우면서 외주 작업의 마감도 지켜야 해서 밤을 새우는 일이 잦았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많은 성인 미혼모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지난해 미혼모 359명을 상대로 진행한 '양육미혼모 실태 및 욕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월 근로소득이 없다고 대답한 비율은 61.6%에 달했다. 출산과 양육으로 학업이나 경력이 단절되는 경우가 잦고 양육을 병행하며 구직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이기 힘든 탓에 부업, 단기 아르바이트 등 질 낮은 일자리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미혼모 지원 단체는 일자리를 가지지 못한 성인 미혼모를 대상으로 한 경제적 지원책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최형숙 대표는 "2인 가구 기준 소득이 한 달에 151만원 이하인 한부모 가족은 월 20만원의 자녀 양육비를 받을 수 있지만 아이를 키우기에 충분한 금액은 아니다"며 "이마저도 기초생활수급비와 중복 수령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성인 미혼모가 겪는 경제적 어려움을 줄여주려는 입법 활동이 시도되고 있으나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정춘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11월 대표 발의한 한부모가족지원법 개정안에는 성인 미혼모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늘리는 내용이 포함됐다.
정 의원실 관계자는 "'청소년 한부모'와 '5세 이하의 아동을 양육하는 미혼모 또는 미혼부'로 지급 대상이 한정된 현행 추가 아동 양육비(자녀 1인당 월 5만원)의 지원 대상을 성인 미혼모까지 넓히는 쪽으로 법안을 개정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정 의원은 기초생활수급비와 한부모자녀양육비를 중복 수령할 수 없는 현행법의 개정도 추진 중이다. 현재 한부모가정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생계 급여를 지원받는 경우 한부모자녀양육비는 받을 수 없다. 정 의원실은 "미혼모 가정이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면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최대 87만1천900원인데 아이를 키우기엔 부족한 수준"이라며 "여성이 혼자서도 아이를 키우는 데 경제적 어려움이 덜하려면 기초생활수급비와 한부모자녀양육비 중복 수혜가 가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한부모가족지원법 개정안은 지난달 28일 여성가족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지만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정 의원실 측은 "아직 한부모가족지원법 개정안을 법사위 안건으로 상정할지 결정되지 않은 상태"라고 전했다.
생활비 지원뿐 아니라 미혼모의 다양한 수요를 고려한 직업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김지연씨는 "고용노동부에서 진행하는 취업 성공패키지에 참여했지만 내가 진짜 원했던 직군과 관련한 프로그램을 찾지 못했다. 보다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제공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혼모가 대학에 진학하거나 출산으로 중단된 학업을 이어갈 수 있는 지원책 역시 마련돼야 한다고 말한다. 최형숙 대표는 "현재 (교육 관련) 정부 지원은 청소년 미혼모의 검정고시를 지원해주는 데 그친다"며 "정부나 민간 차원에서 학력·경력 단절을 겪는 성인 미혼모를 위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미혼모 10명 중 3명, "직장에서 불이익당해"
아직도 미혼모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실제로 '양육미혼모 실태 및 욕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혼모들의 27.9%가 '임신 이후 직장에서 권고사직을 강요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다가 미혼모 지원 단체의 대표가 된 대구미혼모가족협회(I'm MOM) 김은희 대표는 "임신했다는 소식이 회사에 알려지자 대표가 회의실로 불러 '네가 나갈래, 내가 나갈까'라고 다그쳤다"며 "사내에서 쏟아지는 차별적 시선에 결국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직장에서 겪었던 차별과 미혼모가 처한 현실에 부당함을 느껴 미혼모 지원 단체 활동을 시작했다.
취재에 응한 대다수의 성인 미혼모들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사실을 숨긴 채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연정(26·가명)씨는 "혹시라도 미혼모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불이익을 당할까 염려돼 아이의 존재를 숨긴 채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형숙 대표 역시 "방송 출연으로 미혼모라는 사실이 알려진 뒤 당시 운영하던 미용실 손님이 뚝 끊겨 결국 문을 닫아야 했던 경험이 있다"며 "미혼모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아도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혼모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기업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선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개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도경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미혼모에게 차별적인 기업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인식 개선 노력뿐 아니라 미혼모나 아이를 양육하는 여성을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면서 "미혼모를 고용하는 사업자에게 인센티브를 주거나 인건비를 지원하는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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