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산불 100일] ③ "빚내서 복구" 눈물겨운 몸부림 중소상공인

입력 2019-07-10 07:00
수정 2019-07-10 09:04
[강원산불 100일] ③ "빚내서 복구" 눈물겨운 몸부림 중소상공인

정부 지원·한전 보상 없어…"그래도 반드시 일어서야죠" 각오

(속초=연합뉴스) 이종건 기자 = "반드시 일어서고야 말 겁니다."

속초시 장사동 진성폐차장 대표 김재진씨는 요즘 누구보다 바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커멓게 타버린 건물을 철거한 자리에 새로운 공장을 짓고 형체도 없이 녹아내린 수백 대의 차들을 치운 자리에 새로운 차들을 들여오는 작업에 눈코 뜰 새 없다.

산불의 아픈 상흔을 털어내는데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김씨의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산불발생 100일 만에 다시 찾은 사업장은 산불 당시 화마에 초토화됐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상당 부분 정리된 모습이었다.

하지만 정리돼 가는 사업장과는 달리 김씨의 마음은 오히려 무겁기만 하다.

생각지도 않은 빚더미에 올라앉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산불피해복구에 지금까지 11억원 정도를 투입했다.

복구비용은 모두 금융권에서 대출받았다.



복구를 마무리하려면 앞으로 4억원 정도가 더 필요한 실정이다.

김씨는 "이전 대출금도 아직 다 갚지 못했는데 보상이나 국가지원 한 푼 받지 못한 상태에서 산불피해 복구에 필요한 자금을 융통하다가 보니 오로지 빚만 늘어나게 됐다"며 "복구공사를 업체 맡기지 않고 직접 한 덕분에 그나마 비용을 상당 부분 절약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동안 겪은 어려움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며 "힘들지만, 반드시 극복하고 산불 이전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며 재기의 각오를 다졌다.

고성군 원암리 설악레저 대표 양문석씨도 요즘 산불 흔적을 털어내느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공연 장비 대여업체를 운영하는 양씨 역시 지난 4월 사업장을 덮친 산불에 모든 것을 잃었다.

수년 동안 사 모았던 각종 장비는 완전히 고물 덩어리로 변했고 장비 운반용 차량도 모두 전소돼 말 그대로 길바닥에 나앉게 됐다.

하지만 양씨는 낙담할 사이가 없었다.



계약해 놓은 행사들을 치러내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양씨는 산불의 충격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대출을 받아 마련한 최소한의 공연장비와 차량을 가지고 다시 일터로 나섰다.

그러는 사이 3개월이 지났다.

양씨가 이처럼 동분서주하는 사이 다행히도 피해조사가 끝나 사업장에 쌓여 있던 흉물스러운 산불 잔해물은 깨끗하게 치워졌다.

잔해물이 치워진 자리에 최근 양씨는 새로운 사무실과 창고를 짓기 위한 기초공사를 시작했다.



양씨는 "국가가 선 보상을 해주고 나중에 한전에 구상권을 청구하면 되는데 그게 안 되다가 보니 당장 일을 해야 할 업체 입장에서는 빚을 내는 수밖에는 없었다"며 "역경을 극복하고 반드시 일어설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산불피해를 본 고성군 토성면 성천리의 한 황태가공 업체도 생산설비를 보수하고 화마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장 건물 외벽을 철판 외장재로 덧씌우는 작업을 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이처럼 산불발생 100일을 맞은 속초와 고성지역에서는 재기를 위한 중소상공인들의 눈물겨운 몸부림이 한창이다.

하지만 이들의 눈물겨운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상업시설의 피해복구는 상당 부분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성금배분 이외 정부 지원이 전혀 없는 데다가 한전과의 보상 협상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조립주택 지원 등 일정 부분 정부 지원이 이뤄진 일반 이재민들과는 달리 상공인의 경우 관련법에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지원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원이라면 추가 대출과 대출금 상환 기간 연장, 이자감면이 전부다.

그러나 이미 금융권 대출이 있는 대부분의 업체는 빚만 늘어나는 추가 대출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건물 잔해물이 대부분 치워진 일반 주택과는 달리 9일 돌아본 고성군 용촌리와 성천리, 원암리 일대의 소규모 공장과 펜션 등 상업시설은 산불 당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용촌리의 한 펜션 주인은 "상환해야 할 대출금도 만만치 않은데 또다시 대출을 받는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며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이에 따라 중소상공인들은 상공인들도 지원대상에 포함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해줄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피해복구에 필수적인 한전과의 보상 협상도 답보상태다.

한전과 합의해 피해조사를 상당부분 진행한 고성지역 이재민들과는 달리 속초지역 이재민들과 산불피해 지역 중소상공인들은 아직 합의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속초지역 이재민과 산불피해 지역 중소상공인들을 위주로 구성된 속초고성산불비상대책위원회는 손해사정사 선정과 비용 부담을 모두 한전에서 부담하기로 합의한 고성지역 이재민들과는 달리 손해사정사 선정은 대책위, 조사비용은 부담은 한전이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 비대위는 오는 11일 한국전력 본사를 찾아가 요구사항 수용과 조속한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집회를 할 계획이다.

mom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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