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산불 100일] ② 200㎜ 비 예보에 이재민들 "배수로 파고, 방수포 덮고"

입력 2019-07-10 07:00
[강원산불 100일] ② 200㎜ 비 예보에 이재민들 "배수로 파고, 방수포 덮고"

흙밖에 안 남은 민둥산 산사태 걱정…흙 포대 쌓는 등 2차 피해 예방 안간힘

(강릉=연합뉴스) 이해용 기자 = 지난 4월 대형산불이 발생한 강원 강릉시 옥계면은 아직도 곳곳에 화마의 상처가 역력했다.

동해고속도로 망상 톨게이트가 가까워지자 갑자기 녹음이 사라지고 민둥산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을 인근에서는 무더위 속에 불에 탄 소나무를 베는 엔진톱 소리가 요란했다.

집 근처의 불탄 나무들은 상당수 베어냈으나 산주와 연락이 닿지 않거나 간벌을 아예 포기한 산은 나무들이 말라 죽고 있었다.

검게 탄 소나무를 베어내 쌓아놓은 나뭇더미는 어른 두 키의 높이로 마을 어귀 곳곳에 쌓여 있었고, 대기하고 있던 트럭들은 중장비가 나무들을 실어주자마자 펄프 공장을 향해 사라졌다.

봄철 강풍과 함께 번진 대형산불로 집과 농기구 등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이재민들은 이번에는 장마가 걱정이다.

지방자치단체가 불탄 나무를 간벌한 산길을 따라 배수로를 파놓기는 했지만, 비가 많이 내릴 경우 물을 흡수할 수 있는 나무들이 없기 때문에 산사태 등 2차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아름드리 소나무를 벤 산기슭 바로 밑에 사는 주민들은 흙이 빗물에 유실되지 않도록 방수포를 덮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장마철 산사태로 돌과 흙더미가 집을 덮칠 것으로 우려되는 곳에는 철제 낙석방지망까지 설치됐다.

또 토사가 밀려 내릴 것으로 예상하는 집 주변에는 흙을 포대에 담아 쌓고, 유실되지 않도록 풀씨를 뿌리는 작업도 한창이다.

주민 함모(51)씨는 마른장마 속에서도 집이 전소된 산기슭 주변에서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하고 있었다.

산불 당시 91세와 85세인 부모님을 모시고 간신히 집을 빠져나왔던 그는 불탄 자리에 임시로 설치한 컨테이너에서 생활하고 있다.

아직도 바람이 불면 집 뒤 검은 숲에서 불에 탄 재 등이 날아오기 때문에 원래 살던 곳에서 좀 더 떨어진 밭에 새로 집을 지을 생각을 하고 있다.

산불 보상비에다 대출을 내 새로 집을 건축할 예정이지만 자칫 장마가 길어지면 공사가 늦어질 수도 있다.

함씨는 "몇 해 전 태풍이 왔을 때 집에 물이 들어온 적이 있어 산불까지 난 올해는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가 경제력이 나아지면서 무슨 일이 발생하면 뒤처리는 잘 하지만 예방은 아직도 취약한 것 같다"고 걱정했다.

산불로 보금자리가 사라진 마을에서는 일부 주민이 새로 집을 짓기 시작했으나 함씨처럼 대부분의 주민은 아직도 컨테이너나 비어 있던 한라시멘트 아파트를 긴급 수리한 곳에서 한여름을 보내는 게 현실이다.



이에 따라 지금 당장 집을 짓는 이재민보다는 장마 이후나 내년에 집을 짓는 주민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집을 새로 짓는 게 부담이 많은 이재민은 건축을 포기하고 컨테이너 등의 임시 거주시설에서 계속 살아갈 수밖에 없다.

대부분 농사에 종사하는 이곳 이재민들은 요즘 폭염 때문에 임시 거주시설에서 일어나자마자 새벽부터 농경지로 달려간다.

집을 지은 지 14년 만에 산불로 잃어버린 김창진(74)씨도 새벽 6시 농사일을 하러 임시 거주시설을 나선다.

그는 산불로 타 버린 집 뒤의 산에서 산사태가 날까 봐 2m 높이로 관계 기관이 설치하려던 옹벽을 3m로 올려 달라고 요구했다.

김씨는 "산의 나무가 모두 불타는 바람에 흙에 힘이 없어 장마철 산사태가 날까 걱정"이라며 "도로변 경사가 심한 곳은 산불로 나무가 모두 타 버렸기 때문에 큰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갑작스러운 산불로 들판에 심을 모종이 불타거나 파종이 늦어지면서 올해는 농사도 신통치 않다.

햇감자를 캔 일부 주민은 산불 때문에 감자 씨를 늦게 심어 굵은 게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담배를 심은 집도 심는 시기가 늦어져 한두 마디 정도 성장이 늦어지고 있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이재민들을 정부 지원비로는 불에 타버린 농기구 등을 구매하는 데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다.

농자재나 비닐하우스 등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설치비의 70%를 지원하고 나머지는 이재민이 부담하도록 원칙을 세워놨지만, 실제 산불피해 주민이 감당해야 하는 비용은 훨씬 많다.

산불 당시 한밤중에 맨몸으로 집을 탈출한 윤재선(74)씨는 "산불이 나면 모든 게 손해"라며 답답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온실에 키우던 고추 모종 등이 모두 불타는 바람에 다시 구해 심고 있지만, 화마에 농기구가 타버려 농사일을 중단하고 다시 사소한 도구라도 사기 위해 시내로 달려가야 하므로 여간 불편하지 않다.

그는 올해 산불로 농기계와 농자재를 보관하고 있던 창고가 모두 불타고, 165㎡ 규모의 비닐하우스도 소실되는 피해를 봤다.

산불로 비닐하우스가 불에 탄 것과 관련해 그가 받은 돈은 정부 지원금 170만원과 지방자치단체 지원비 70만원이다.

하지만 그가 비닐하우스를 설치하기 위해 수소문해본 결과 업체들은 380만∼400만원을 부르고 있다.

소규모 고추 농사를 하는 윤씨로서는 나머지 비용도 큰 부담이다.



창고 대신 사용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컨테이너 설치는 더디게 진행되고, 비용 부담도 적지 않다.

이미 장마철로 접어들었지만, 불에 탄 창고 자리에는 컨테이너를 설치하기 위한 콘크리트 기초만 설치돼 있을 뿐이다.

관계 기관은 그가 사는 곳이 산이라는 이유로 임시 건축물인 컨테이너를 놓을 자리를 측량까지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측량비뿐만 아니라 컨테이너를 구매하는 비용도 산불피해 지원금으로는 부족하다.

그가 창고 피해보상비로 받는 240만원으로는 현지에서 335만원을 부르는 컨테이너를 사기 힘들다.

윤씨는 "산불피해 보상금으로 받는 돈과 현지 시세가 맞지 않아 울며겨자먹기식으로라도 농자재 등을 사야 하는 형편"이라며 "산불이 나면 자부담해야 하는 게 은근히 많아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기상청은 10∼11일 강릉을 비롯한 강원 영동에 50∼150㎜, 최고 200㎜ 이상 폭우가 쏟아지는 곳도 있을 것으로 예보해 이재민들의 걱정이 크다.

dm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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