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현 "영광의 기타로 20년 연구한 주법 선보인다"

입력 2019-07-09 06:00
신중현 "영광의 기타로 20년 연구한 주법 선보인다"

'헌정 기타 기념 앨범' 발표…14년 만의 앨범, 아들 삼형제와 녹음

핍박받던 시절 슬픔 응축한 '그날들' 등 신곡 2곡 수록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세계적인 펜더 기타를 헌정 받았는데, 제가 보답을 못 했잖아요. 앨범을 통해 제 기타와 연주를 세계적으로 알리고 싶었어요."

지난 8일 오후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81세 거장의 말투는 나긋했지만, 의미가 명확했다. 최고의 영광을 누린 기타리스트로서 "구실을 해야겠다"는 책임감, '레전드' 반열에도 "세상의 평가를 받겠다"는 자신감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록의 대부' 기타리스트 신중현(81)이 오는 15일 '헌정 기타 기념 앨범'을 낸다. 2005년 낸 두 앨범 '도시학'(都市鶴)과 '안착' 이후 14년 만의 정규 앨범이다.

그는 2009년 미국의 기타 전문회사 펜더로부터 아시아 뮤지션 최초, 전 세계 여섯 번째로 기타를 헌정 받았다. 그에 앞서 에릭 클랩턴, 제프 백, 잉베이 맘스틴, 스티비 레이본, 에디 반 헤일런 등 전설적인 음악인들이 선정됐다. 1950년대 중반 미8군 오디션에서 본 펜더 기타를 한없이 부러워한 그가 단 한명의 마스터 빌더(Master Builder)가 만든 맞춤형 펜더 기타를 품에 안는 경사였다.

지난 2006년 12월 은퇴 공연을 한 그가 다시 무대에 오른 것도 이 기타를 헌정 받은 것이 계기였다.

당시 그는 "헌정 받은 기타는 연주하는 감정대로 섬세하게 소리를 받아들여 정말 기가 막힌다"며 "하늘이 돕기 전에 갖기 힘든 기타를 집 벽에 걸어두는 것은 하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남은 삶 동안 펜더 기타에 맞는 기타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데도 방점을 찍었다.

그 바람은 10년이 지나서야 앨범으로 결실을 보게 됐다.

이 앨범에는 그의 세 아들인 시나위 신대철, 기타리스트 신윤철, 드러머 신석철이 참여했다. 신중현이 그간 아들들과 함께 공연한 적은 있지만, 네 부자가 함께 녹음하기는 처음이다.

삼형제는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에 있는 아버지 자택에 틈틈이 모여 함께 작업했다.

"아무래도 제 음악을 애들이 더 잘 아니깐. 또 편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보니 무려 3년이 걸렸어요. 제 밴드가 없어 아들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할 수 없으니 부탁을 했죠. 허허."



국내 최정상 기타리스트인 장남 대철과 차남 윤철은 이번에 각각 베이스와 키보드로 바꿔 연주했다. 막내 석철은 그대로 드럼을 맡았다. 신대철이 2곡에만 참여해 나머지 6곡에선 신윤철의 서울전자음악단 동료인 이봉준이 베이스 연주를 보탰다.

신중현은 "기타 연주를 위한 선곡을 했다"며 "편곡뿐 아니라 노래도 전부 불렀다"고 소개했다. 믹싱과 마스터링을 비롯해 신비로운 앨범 재킷까지 "셀프 카메라"로 촬영했다.

8곡이 수록된 앨범에는 '사랑해줘요'와 '그날들' 등 신곡 2곡이 실렸다. 6곡은 과거 신중현의 밴드 곡, 신중현이 작곡하고 그의 '사단' 가수들이 부른 곡들이 재해석됐다. 그런데 낯익은 제목은 '빗속의 여인'뿐. 장현이 노래하고 '신중현과 더 멘'이 연주한 '안개를 헤치고'(1972), 김정미의 '어디서 어디까지'(1973), '신중현과 세 나그네'의 '바다'(1983) 등 그리 알려지지 않은 선곡이다.

"신곡이나 다름없어요. 발표했어도 음반 자체가 금방 사장됐기 때문에, 판만 냈다뿐이지 아무도 들은 사람이 없어요. 허허. 이번에 다시 제대로 녹음해보고 싶었죠."

그는 이번에 선보인 기타 주법을 "20년가량 연구했다"고 강조했다. 어떤 주법인지 묻자 "말로 설명하기가 참 어렵"단다.

"손가락 기량보다 내공으로 내는 소리죠. 장시간 음악을 들어야 세계적인 기타리스트를 평가하듯이, 제 주법이란 걸 알게 될 때까지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의외로 신곡 '사랑해줘요'는 대중적인 트랙이다. "록은 어려우니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곡"을 만들려 했단다.

그는 "'사랑해줘요'란 말은 감히 밖으로 꺼내기 힘든 말이지 않나"라며 "사랑이 메마른 이 시대에 대담하게 돌격을 했다. 사랑이란 단어를 사회적으로 부각하고, 노래로 메마른 마음을 위로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그날들'에선 후반부, 그의 시그니처인 강렬한 사이키델릭 록 사운드를 만끽할 수 있다.

"제 신세타령 같은 곡이죠. 지난 시절 핍박받고 고생하던 시절을 추려냈어요. 후회스럽고, 시간을 빼앗긴 옛날 그 시절을 노래로나마 달래고 싶은 심정에서 만들었어요. 곡 후반부, 가슴에 맺힌 슬픔이나 인간적인 면의 억울함을 기타로 표현했죠. 극단적인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동원했어요."

1955년 17세에 미8군 무대 기타리스트로 활동을 시작한 신중현은 1958년 한국 최초의 기타 솔로 음반인 '키-신 기타 멜로듸'를 냈다. 1962년에는 한국 최초의 로큰롤 밴드 '애드 포'(Add 4)를 결성하는 등 국내에 록 음악의 씨앗을 뿌렸다.

'그날들'에 투영된 1970년대는 신중현 음악 인생에서 명암이 혼재된 시절이다. 그는 '신중현 사단'을 일구며 전성기를 누렸으나 독재정권 찬양가를 만들라는 요구를 거절하자 탄압을 받았다. '거짓말이야', '아름다운 강산', '미인' 등 그의 곡들은 줄줄이 금지곡이 됐다. 또 대마초 파동에 휘말려 정신병원에 갇히고 서대문 구치소에 수감되는 고초도 겪었다.

시대 굴곡을 몸으로 겪으면서도 그는 60여년간 기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과거 그는 "아내, 애들을 쳐다도 안 보고 밥만 먹으면 기타를 쳤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평생 반려자였던 부인 명정강 씨는 지난해 3월 그의 곁을 떠났다. 한국 최초의 여성 드러머로 알려진 고인은 1960년대 여성 밴드 블루 리본의 드러머로 미8군 쇼에서 활동했다.

양지면에서 홀로 지내는 그는 "팔자가 독신인가보다"라고 헛웃음을 지었다.

"밥도 직접 해 먹고, 또 새로운 작업에 돌입해 하루가 바빠요. 가을 미국 로스앤젤레스 공연도 얘기 중이고요."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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