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벗어나고 싶지만…남편에게 달린 결혼이주여성 체류권(종합)

입력 2019-07-08 18:06
폭력 벗어나고 싶지만…남편에게 달린 결혼이주여성 체류권(종합)

결혼이주여성 42.1% 폭력경험…폭력피해자 ⅓은 "신고 안해"

국적취득 신원보증 주체 여전히 '한국인 배우자'



(서울=연합뉴스) 김종량 오수진 기자 = 2017년 한국인과 결혼한 20대 베트남 여성 A 씨가 가진 결혼에 대한 환상은 한국에 온 직후 깨져버렸다. 남편은 자신에게 알 수 없는 약을 건네며 성관계를 요구했고 A씨가 이를 거부하자 바로 폭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A 씨는 이주여성 상담센터의 도움을 받아 경찰에 신고했으나 남편의 폭력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증거가 필요하다는 말에 낙담했다. 긴 재판 과정은 A 씨를 힘들게 했고 결국 그는 재판을 포기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지난 4월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주죄로 열린 폭력피해 이주여성 심포지엄에서 해당 사례를 발표한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 웬티현 상담원은 "결혼이민자의 입장에서 보면 극도의 수치심을 느끼고 자살시도를 할 만큼의 심각한 인권침해 문제"라고 폭력 사례를 비판했다.

국내 결혼 이주민 숫자는 약 30만명에 달하고 이들의 약 80%는 여성이지만 이들 대다수는 가사노동, 자녀 양육을 포함한 가정 내 의사결정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댁 구성원, 배우자로부터 폭력피해가 발생하면 신고를 꺼리고 '부부 문제'라며 외부에 드러내기 꺼리는 경우가 많다.

체류 허가, 국적취득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배우자와의 갈등은 이들에게 한국에서의 삶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 결혼이주여성 10명 중 4명은 "폭력피해 경험"

지난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내놓은 '결혼이주민의 안정적 체류 보장을 위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결혼이주여성 920명 가운데 가정폭력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42.1%에 달했다.

가정폭력 유형은 심한 욕설이 81.1%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한국 생활 방식 강요(41.3%), 폭력 위협(38%), 생활비 미지급(33.3%), 성행위 강요(27.9%), 부모·모국 모욕(26.4%) 순으로 나타났다.

가정 폭력시 도움 요청을 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없다'(31.7%)라는 응답이 '있다'(27%)라는 답변보다 많았다.

도움 요청을 하지 않은 이유로는 '알려지는 것이 창피해서'가 25%로 가장 많았다. 이어 '누구한테 요청할지 몰라서'(20.7%), '아무 효과도 없을 것 같아서'(20.7%) 등으로 조사됐다. 방법을 모르거나 체념하는 수준에 이른 셈이다.

최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전국 다문화가족 실태조사 연구' 보고서를 봐도 다문화가족의 이혼·별거 사유 가운데 학대·폭력(8.6%)은 성격 차이(52%), 경제적 문제(12.6%) 다음으로 많았다.

특히 학대·폭력을 이혼·별거 사유로 꼽은 응답은 결혼이민자(9.5%), 여성(10.2%), 20대(24.8%) 집단에서 높게 나타났다.

◇ "친정 가족 체류권까지 남편 좌지우지"

이주민, 여성이라는 이중적 취약성에 갇힌 이들이 가정폭력 신고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의 체류자격이 실질적으로 배우자에게 종속돼 있기 때문이다.

결혼이주여성의 체류자격 연장 허가 시 배우자의 신원보증을 요구한 출입국관리법 시행규칙은 이주여성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지난 2011년 폐지됐지만, 여전히 신원보증을 요구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상담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더욱이 이들이 한국 국적을 취득할 때는 여전히 한국인 배우자의 영향력은 여전히 절대적이다.

한국이주여성센터 강혜숙 공동대표는 "외국인은 귀화신청 후 면접을 봐야 하는데 결혼이주여성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면접에 배우자가 동행하지 않으면 아예 면접 자체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강 공동대표는 "법무부는 체류 기간 연장 과정 내 한국인 배우자의 신원보증제도를 폐지했고 귀화 과정에서 한국인 배우자의 신원보증제도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생계유지능력 입증 등의 관련 서류를 발급받는데 남편의 영향력은 여전히 절대적"이라고 지적했다.

배우자가 국적취득 등을 볼모로 이주여성을 협박하거나 폭력을 행사해도 이주여성이 폭력 신고를 꺼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적취득 이전이라도 결혼이주여성이 가정폭력 피해를 입증하면 합법적으로 체류자격을 연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이혼 판결문에 이혼 귀책 사유가 한국인 배우자에게 있음이 명시돼야 한다.

참기 어려운 폭력으로 이혼을 결심해도 자신이 피해자라는 증거를 스스로 모두 수집해놓고 이를 이혼 재판에서 완벽히 입증해야만 하는 것이다.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 이채희 센터장은 "합법적 체류자격이 보장되지 않은 결혼이주여성은 상황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아도 가정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며 "특히 남편의 초청으로 아내의 가족들이 한국에 들어온 경우 폭력 이후 결혼이주여성의 선택권은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가정폭력 꺼리지 말고 경찰서·다누리콜센터 신고가 먼저

결혼이주여성이 가정폭력 피해를 봤거나 이러한 상황을 목격한 경우 가장 먼저 할 일은 가까운 경찰서나 여성가족부 산하 다누리콜센터(☎ 1577-1366)에 신고하는 것이다.

다누리 콜센터에서는 피해 여성들이 가까운 쉼터에 머무를 수 있도록 알선해 준다. 부부 상담도 받을 수 있다. 또 취업을 위한 직업교육도 받을 수 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이혼을 원할 경우에는 무료법률 상당도 받을 수 있다. 자녀에 대한 친권과 양육권은 물론 남편으로부터 양육비를 지급받을 수 있는 방법도 알려준다.

여성가족부는 이 같은 이주여성 피해자를 위해 지난달 대구와 전남이주여성인권센터를 '폭력피해 이주여성 상담소' 운영기관으로 지정했다. 이달 중 인천과 충북에도 개소할 예정이다.

이주여성 상담소는 가정폭력, 성폭력 등으로 가정해체, 체류 불안정 등 복합적인 위기를 겪는 이주여성들에게 상담과 임시 보호, 의료·법률지원 등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이주여성은 한국어 및 출신 국가 언어로 상담과 통·번역, 의료·법률 등 다양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sujin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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