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비정규직 해결하자" 노정 교섭 요구…정부는 난색
"실질적 사용자가 대화 응해야" vs "경사노위 등 대화 틀 이미 있어"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공공부문 비정규직 파업에 나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정부에 노정 교섭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파업 이틀째인 4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노조는 주로 처우개선을 요구한다"고 밝힌 데 대해 논평을 내고 "5만명이 넘는 조합원이 운집한 3일 파업 집회의 핵심 요구도 비정규직 철폐와 차별 해소를 위한 노정 협의 틀 구축이었다"고 반박했다.
민주노총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처우는 기획재정부의 지침 하나로 결정된다"며 "해결 의지가 있다면 2020년 정부 예산 반영을 논의할 중앙 협의부터 지금 당장 열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민주노총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노정 교섭 틀 구축을 이번 파업의 핵심 요구로 내걸고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가 결국 정부 예산과 정책에 좌우되는 만큼, '실질적 사용자'인 정부가 교섭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개별 공공기관을 상대로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과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한 교섭을 벌여도 공공기관이 '예산 제약' 문제를 들고나와 교섭이 막히는 경우가 다반사인 만큼, 예산 편성 권한을 가진 중앙정부와 직접 교섭이 필요하다고 민주노총은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요구에 부정적이다. 민주노총과 다양한 방식의 노정 협의를 하고 있어 별도의 교섭 틀을 구축하는 게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 불참 중인 민주노총이 경사노위를 우회하는 교섭 틀을 요구하는 데 대해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민주노총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에 관한 대화를 원한다면 경사노위에 참여하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이다.
경사노위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를 논의할 업종별 위원회인 '공공기관 위원회' 발족을 준비 중이다.
경사노위는 이날 최고 의결 기구인 본위원회를 열어 공공기관 위원회를 포함한 5개 업종별·의제별 위원회 설치 안건을 상정하려고 했으나 청년·여성·비정규직 근로자위원 3명의 불참으로 무산됐다.
공공기관 위원회에는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닌 경영계도 참여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민간부문 비정규직 문제와도 관련되기 때문에 경영계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게 경사노위의 설명이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경사노위 참여를 의욕적으로 추진했으나 강경파의 반대로 참여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정부가 민주노총에 경사노위 참여를 요구하며 노정 교섭을 거부하는 것도 논란의 여지는 있다.
민주노총이 요구하는 노정 교섭 틀이든, 경사노위의 사회적 대화든,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를 논의할 대화가 시급하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노동계는 보고 있다.
이번 파업도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한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이 가진 한계에서 비롯됐다는 게 노동계의 시각이다.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큰 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7월 발표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라 공공부문에서 상시·지속적 업무를 하는 비정규직 약 20만5천명을 2020년까지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사업이 진행 중이다.
지난 6월 기준으로 18만2천584명(89.3%)에 대해 정규직 전환 결정이 이뤄졌고 이 가운데 14만1천329명(77.4%)은 정규직 전환 절차가 완료됐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노동자의 처우개선을 보여주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규직으로 전환된 공공부문 노동자 1인당 평균 연봉은 전환 이전보다 390만원 증가했다.
통계상으로는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의 성과가 나타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체감하는 것은 기대 수준에 크게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공공기관이 파견·용역 노동자를 자회사에 직접 고용하는 방식으로 정규직화하는 것은 노동계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정부는 자회사 정규직 채용도 정규직 전환이라는 입장이지만, 노동계는 간접고용의 틀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공공부문 정규직화 3단계인 민간위탁 사업으로 내려가면 잡음은 더 커진다.
정부는 쓰레기 수집·운반과 같은 민간위탁 사업의 특성상 일률적인 기준에 따른 정규직 전환은 어렵고 유관 기관과 당사자의 협의를 통한 자율적 결정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지만, 노동계는 사실상 정규직화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한다.
민주노총은 민간위탁 사업의 예산 낭비가 심각하다며 이들 사업에 들어가는 예산으로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직접고용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노동부는 이달 중 민간위탁 사업 분야 비정규직의 처우개선 등을 위한 '민간위탁 노동자 근로 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계획이지만, 노동계의 기대 수준에 미칠지는 미지수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과 함께 문재인 정부의 노동 분야 핵심 국정과제에 속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효과가 퇴색했고 정부 여당은 반대 여론에 밀려 속도 조절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의 대책으로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을 추진 중인데 노동계는 이 또한 후퇴로 간주하고 있다.
여기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파업이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사회 공약' 전반에 대한 실망감을 보여줬다는 게 노동계의 시각이다.
진보 진영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에 기대서는 노동자들의 삶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며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해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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